사이버안보 조사 극히 이례적…'반독점' 알리바바보다 심각 관측도
인터넷선 "미국에 민감 데이터 넘겨" 소문…세계 자본시장 또 '공산당 리스크'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滴滴出行)이 화려한 조명 속에서 80조원대의 몸값을 인정받으며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했지만, 그 직후 중국 정부로부터 국가 안보 문제로 조사를 받게 되면서 세계 자본시장이 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더욱이 디디추싱이 이례적으로 국가안보 문제로 조사를 받게 됐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이 회사가 중국 당국의 '인터넷 공룡 길들이기 시범 케이스'가 된 알리바바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 안보 위협 시각서 디디추싱 조사…기존 '인터넷 공룡 길들이기'와 차원 달라
중국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은 금요일인 지난 2일 밤 전격적으로 디디추싱에 대한 조사 개시를 선언했다.
중국의 사이버 감독 사령탑인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기구인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은 "국가안보법과 인터넷(사이버)안보법을 바탕으로 국가 데이터 안보 위험 방지, 국가 안보 수호, 공공이익 보장을 위해 디디추싱을 대상으로 인터넷 안보 심사를 한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이 더는 자세한 조사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중국 당국이 국가 안보 위협의 관점에서 디디추싱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마윈(馬雲)의 작년 10월 '설화'(舌禍) 사건을 계기로 중국 당국은 반독점, 금융안정, 소비자 정보 보호 등을 주된 명분으로 앞세워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의 대형 인터넷 기업을 향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지만, 이번에는 내건 명분이 전과는 다르다.
반독점 문제가 거액의 벌금 부과 등 행정 처벌로 끝나고 말 일이라면 국가안보 문제는 최악의 경우 회사 경영진이 무거운 형사 처벌을 받고 회사 사업 기반이 크게 흔들릴 위험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구체적으로 '데이터 안보 위험'을 거론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는 중국 정부가 디디추싱이 매일 수집하는 막대한 빅데이터가 중국 바깥으로 이미 흘러나갔거나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난 2017년 시행된 중국의 인터넷안보법(통칭 사이버보안법)에 따르면 정보통신(IT), 운송, 에너지, 금융 등 '중대 정보'를 관리하는 기업은 반드시 중국 내에 중요 정보를 저장하고, 중국 정부가 요구할 때 이를 제공해야 한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에서 방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디추싱은 방대한 실시간 모빌리티 데이터를 매일 수집한다"며 "디디추싱은 이런 데이터의 일부를 자율주행 기술 및 교통 분석에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디디추싱이 미국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 당국이 안보상 민감하다고 여기는 데이터를 미국 측에 제공한 것이 문제가 됐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졌다.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이 최근 3주간 이미 디디추싱을 조사한 뒤 미국 상장 중단을 요구했지만 디디추싱이 상장을 강행하면서 사달이 났다는 미확인 소문도 있다.
디디추싱 측은 이런 소문들을 강력히 부인했다.
리민(李敏) 디디추싱 부총재는 3일 자신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디디추싱이 해외 상장을 위해 데이터를 미국에 통째로 넘겼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봤다"며 "해외에 상장한 많은 중국 기업처럼 디디추싱도 국내 사용자 데이터를 국내 서버에 보관한다"고 밝혔다.
디디추싱(滴滴出行) 웨이보 계정도 리 부총재의 글을 공유하면서 "헛소문을 전파하지도, 믿지도 말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국가 안보 위반 혐의를 받는 디디추싱이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유베이쥔'(遊北君)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웨이보에서 "이번 일은 일가족이 극형을 당할만한 국가 배반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중국 회귀' 거슬러 미국 간 디디…"공산당 100주년 직후 발표 심각"
중국 자본시장에서는 디디추싱이 '미국 탈출'이라는 시대적 조류를 거슬러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결정을 한 것이 화를 초래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미중 신냉전이 본격화하고 나서 중국은 자국의 유망한 대형 기술기업들이 자국의 확실한 통제권에 있는 홍콩이나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선호해왔기에 시장가치가 745억 달러(약 85조원) 달하는 '초대형 대어' 디디추싱의 뉴욕행은 과감한 행보로 주목받았다.
디디추싱은 이번 상장으로 44억달러(약 5조원)의 자금을 새로 조달했는데 중국 기업으로서는 2014년 250억 달러(약 28조 원)를 조달한 알리바바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하지만 반대로 디디추싱의 뉴욕 증시에 앞서 알리바바, 징둥, 바이두, 샤오펑 등 미국 증시에 상장한 여러 중국 기술기업이 작년부터 잇따라 홍콩에서 추가로 상장을 하면서 미국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또 콰이서우(快手) 등 '대어'들이 홍콩을 기업공개(IPO)를 통한 첫 상장 장소로 선택했다.
미중 간에는 증시 감독 문제를 놓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심각한 갈등 요인도 있다.
미국은 작년 12월 '외국회사문책법'(The Holding Foreign Companies Accountable Act)을 도입해 자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직접 감독·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국은 자국 기업 감독은 미중 당국 간 협력을 통한 간접적 방식으로만 가능하다고 맞서고 있어 '외국회사문책법' 유예 기간이 끝나는 2024년부터 알리바바, 바이두 등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 200여곳이 무더기로 상장 폐지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민감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민감한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디디추싱이 경영 현황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미국 증권감독 당국에 제출하고 뉴욕증시에 상장한 행동이 중국 당국의 눈에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 특유의 전제적 통치 시스템에 익숙한 이들의 눈에는 이번 디디추싱의 조사 개시 시점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당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들여다볼 것인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발표 시점이 중요하다"며 "이번 소식은 디디추싱의 IPO 직후일 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직후에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자본시장에서는 '디디추싱 사건'을 계기로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 정부의 예측불가능한 규제 리스크가 또 부각됐다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디디추싱의 주가는 지난 금요일 거의 11% 가까이 빠지며 급반전했는데 이는 중국 당국의 인터넷 단속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 사모펀드 회사 카이위안캐피털의 최고투자자(CIO)인 브록 실버스는 블룸버그 통신에 "이는 투자자들에게 매우 불공정한 것으로 시장의 진실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며 "중국 당국은 조사를 받는 기업의 상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ch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