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세계평화포럼서 미·영·프-중·러 나뉜 채 격한 비방전
홍콩매체 "수백 청중 앞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 놓고 설전"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P5) 대사와 전직 관료, 학자 등이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중국의 대외 정책을 놓고 격한 설전을 벌였다.
이들이 정면으로 충돌한 주제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였다.
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4일 베이징 칭화대에서 열린 제9차 세계평화포럼에서 이들 5개국 대사는 학생과 학자 등 수백명의 청중 앞에서 강하게 부딪혔다.
행사 이름은 '평화 포럼'이었지만, 이들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념을 확대·강요하려 하는지 여부를 두고 미국·영국·프랑스 대 중국·러시아로 갈라져 치열하게 논쟁했다.
로랑 빌리 중국 주재 프랑스 대사는 자국에서 중국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면서 "누구도 중국이 자신의 모델을 강요하려고 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년 전부터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 일부 언론인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목도해왔다"면서 "그것은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진정한 의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루사예(盧沙野)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가 트위터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대만 문제를 놓고 프랑스 의원과 학자, 외교관을 공격한 일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주중 프랑스 대사의 발언은 중국 주재 러시아 대사에 의해 몇차례 가로막혔다.
안드레이 데니소프 주중 러시아 대사는 "중국이 국경 밖 누구에라도 자신들의 이념을 강요한다는 단 하나의 사례라도 내게 줄 수 있다면 매우 고맙겠다"고 비아냥댔다.
그는 빌리 프랑스 대사의 발언을 중간에 끊으면서 "미안하지만 그건 이념과 상관없다"고도 했다.
이에 빌리 대사가 "표현의 자유, 자유, 민주주의, 이건 전적으로 이념의 문제"라고 응수하자, 데니소프 대사는 "좋아, 좋아, 자유"라며 짜증난다는 식으로 대꾸했다.
데니소프 러시아 대사는 이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강연한 사례를 거론하면서 "우리는 그것(자유와 민주주의)이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안다. 그렇기에 우리의 토론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위훙쥔(于洪君) 전 중국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부부장의 발언에 맞장구를 친 것이다.
위 부부장은 "아프가니스탄은 민주주의적 개혁이 실패한 전형적인 사례다. 이제 누군가는 그저 떠나고만 싶어하고 더 큰 재난이 기다리고 있다"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비판했다.
SCMP는 "러시아와 프랑스 대사 간 격렬한 이념 논쟁은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 하고, 러시아와 그 동맹들은 중국을 지지하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광범위한 지정학적 긴장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윌리엄 클라인 중국 주재 미국 대사대리는 "세계 민주국가들은 자기 확신에 찬 중국과 파괴적인 러시아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나라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을 재구성하는 기후변화, 코로나바이러스, 기술혁신 등 질서를 존중하지 않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미국은 동맹들에 우리와 중국 중에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캐롤라인 윌슨 중국 주재 영국 대사는 "우리는 1950년대 중국을 처음으로 인정한 나라 중 하나로,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모델을 중국이나 공산당에 강요하려 하지 않았다"면서 "중국도 똑같이 자신들의 모델을 다른 이들에 강요하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한편, 포럼에서는 중국-유럽연합(EU) 투자협정 비준 중단을 놓고도 설전이 벌어졌다.
니콜라스 샤퓌 중국 주재 EU 대사는 중국이 자신들의 체제가 서방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유럽에게는 중국이 자유 민주국가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샤퓌 대사는 "중국은 유럽 의회에 제재를 부과했다. 민주사회에서 의회 멤버를 겨냥하는 것은 나라 전체를 겨냥하는 것"이라며 "중국이 투자협정을 원하면 정책을 수정해야한다"고 말했다.
루카 페라리 중국 주재 이탈리아 대사는 "중국에 대한 불신 증가는 이념이나 인종과 거의 상관이 없다. 경제와 코로나, 늑대 전사 외교(전랑외교)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중국사회과학원 장스쉐 전 연구원은 "언제쯤 EU는 미국을 따라하지 않고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가질 것이냐"고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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