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언론인 "한국 배워야"…'국정농단' 주마 단죄에 법치 확립 기대도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이 지난 8일 법정모독 혐의로 수감됐다.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가 철폐된 이후 들어선 민주정부 집권 27년 동안 전직 대통령 수감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기간(2009∼2018) 부패 혐의를 조사하는 사법위원회의 출석을 명령한 헌법재판소에 맞서다가 15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주마 전 대통령은 경찰의 체포 집행 시한인 지난 7일 자정 직전에야 스스로 경찰에 출두해 최신 교정시설에 갇혔다.
그는 경찰의 체포 집행을 긴급 중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기했지만, 피터마리츠버그 고등법원은 그가 수감된 지 하루 만인 9일 이를 기각했다.
자신의 오른팔 격으로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사무총장이던 에이스 마하슐레도 앞서 지난 5월 부패 혐의로 당직이 정지된 것에 항의해 소송을 냈지만 이날 역시 법원에서 기각됐다.
주마 전 대통령의 수감과 마하슐레의 당직 정지 유지는 부패가 만연한 남아공에 법치를 확립하는 데 큰 이정표로 국내외에서 평가받는다.
현지 24시간 보도채널 eNCA는 남아공 브랜드 가치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남아공의 전직 대통령 수감은 '한국 따라하기'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지난 5월 초 남아공 주간지 선데이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남아공이 한국을 본받아 주마 전 대통령을 수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칼럼은 뇌물수수, 국정농단 등의 혐의를 받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없다"는 발언 후 궐석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교정시설에 갇힌 것을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주마 전 대통령은 반부패 사법조사위원회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면서 헌재의 위원회 출석 명령도 따르지 않았다. 이후 사실상 궐석 재판 형식으로 헌재에서 법정 모독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이번에 수감됐다.
정작 그에 대한 부패혐의 재판은 별도로 진행돼 나중에 추가 유죄판결이 나올 수도 있는 본 게임은 사실상 이제부터다. 주마 전 대통령은 정치적 마녀사냥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제1야당인 민주동맹(DA)의 존 스티엔헤이즌 대표도 지난 6월 초 한 웨비나에서 주마 전 대통령을 겨냥해 "남아공도 한국처럼 국가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스티엔헤이즌 대표는 주마 전 대통령 수감 후 최고지도자가 수감되면 그 누구라도 수감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넬슨 만델라 재단도 주마 전 대통령에 대해 지난 20년간 사법절차에 대한 혼란을 조장해 부패에 대한 면책 문화를 형성한 장본인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아울러 그 지지자들이 최근 무장한 채 "나라를 통치불능의 상태로 만들겠다"고 위협한 것과 관련, 주마 전 대통령이 폭력을 조장하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9일 오후도 주마의 출신지역인 콰줄루나탈주의 만데니 등에서는 그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도로 여러 곳을 차단한 채 타이어를 불태우며 시위하는 모습이 현지 방송 카메라에 포착됐다.
다만 주마 전 대통령이 경찰 체포 집행 시한 직전에 제 발로 나가 수감됐다는 측면에서 폭력적 시위가 더 확산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는 카메라를 따돌리기 위해 경찰 출석 전까지 철저하게 연막을 치다가 체포 집행 직전에 VIP 경호 차량과 경찰 호송 차량에 둘러싸인 채 급히 사저에서 나갔다. ANC에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주마 전 대통령이 경찰에 의해 수갑이 채워진 채 호송되는 모습이 방영됐더라면 지지자들의 폭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마 전 대통령이 수감된 에스트코트 교정센터는 은칸들라 사저에서 200㎞ 정도 떨어진 농촌 지역에 있다.
그는 교정시설에서 개인경호는 받지 않은 채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조치를 위해 구내 병동 구역에 14일간 격리돼 있다고 로널드 라몰라 법무장관이 8일 교정시설 앞에서 기자들에게 밝혔다.
그는 또 전직 대통령이 수감된 것과 관련, "지금은 축하하거나 환호할 때가 아니라 자중하고 인정을 보일 필요가 있다"라면서 주마 전 대통령이 수감 기간 품위 있는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79세인 주마 전 대통령은 이번 15개월 형의 3분의 1 이상만 살면 일단 보석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져 올 성탄절 이전에 출소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벌써 나온다.
남아공 사법부 독립의 한 획을 그은 이번 주마 수감 결정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사례가 본보기로 거론된 것을 보면서 전직 대통령이 두명이나 수감된 우리나라의 현실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