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 국정 공백 속 연료 없어 주요 발전소 가동 중단
현지 화폐 가치 끝없는 추락…달러당…군 당국, 군용 헬기 관광용으로 운영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국정 공백' 장기화 속에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어온 지중해 변 중동국가 레바논의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현지 화폐가치 폭락으로 연료를 구하지 못해 발전소 운영이 중단돼 주요 도시에 전기가 끊기고, 의약품이 동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상황에 약국들도 문을 닫았다고 현지 언론과 외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레바논 국영 전기회사 EDL은 전날 연료 부족으로 자흐라니, 데이르 암마르 등 2개 주요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두 발전소는 그동안 레바논 전체 전력 소비량의 40%를 담당해왔다.
이로 인해 레바논 전역에서 하루 22시간가량 전력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레바논 북부와 동부에서는 전력난과 함께 배수펌프를 가동할 연료 부족으로 수돗물 공급량을 대폭 줄였다.
또 코로나19 위기 속에 의약품 부족으로 약국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레바논 약국 운영주 협회는 의약품 부족으로 수도 베이루트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약국 80%가 문을 닫았다면서, 무기한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레바논에서 전력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당수 주민은 자택에 발전기를 마련해 부족한 전기를 충당해왔다.
급기야 연료 대금 지급이 미뤄지면서 레바논 항구에 석유와 가스를 싣고 들어온 배들이 하역을 거부하자 주요 발전시설이 멈춰섰고, 이제 일반 주택은 물론 공항과 같은 주요 공공시설에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 됐다.
또 주요 의약품 수입회사들이 외화 부족으로 약값을 치르지 못하면서 의약품 창고도 바닥을 드러냈다. 흔한 진통제나 유아용 분유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레바논의 상황을 끝 모를 수렁으로 이끈 건 지난해 8월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와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폭발 사건 후 총사퇴한 내각을 대체할 새 정부 구성이 정치 갈등 속에 11개월째 제자리걸음 하면서, 국정 공백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명목상 대통령제(임기 6년의 단임제)를 채택한 레바논은 총리가 실권을 쥐는 내각제에 가깝다. 다만, 세력 균형을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원칙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지지를 받는 미첼 아운 대통령과 지난해 10월 총리 후보로 지명된 이슬람 수니파 베테랑 정치인 사드 하리리 전 총리가 차기 내각의 규모와 성격을 두고 계속 대치 국면을 이어왔다.
국정 공백 속에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레바논은 1997년 이후 고정환율(달러당 1천507파운드)을 유지해왔는데, 최근 암시장에서는 1달러당 환율이 1만9천150파운드로 2만 파운드에 육박하고 있다. 사실상 현지 화폐 가치는 종잇조각에 가까워지고 있다.
또 경제 위기 속에 그나마 치안을 유지해온 군대까지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
군 당국은 프랑스 등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자구책으로 군용 헬기를 관광 목적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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