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 측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협박 속에도 개최"
취재진 100여명 몰려…개막 2시간 전부터 관람객 행렬
(오사카=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극우세력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등을 전시하는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展)·간사이(關西)'가 16일 일본 오사카(大阪)시에서 개막했다.
오사카부립(大阪府立) 노동센터 '엘·오사카'에서 막을 연 이 전시회는 현지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 진행됐다.
'개최하면 실력 저지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협박문이 최근 엘·오사카 측에 배달되는 등 일본 내 극우세력이 전시회 개최에 격렬히 항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서경·김운성 부부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과 오우라 노부유키(大浦信行) 감독의 영상물 '원근(遠近)을 껴안고 파트(part) 2' 등의 전시에 극우세력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원근을 껴안고 파트 2'에는 히로히토(裕仁·1901∼1989) 전 일왕의 모습이 담긴 콜라주 작품을 불태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불타는 장면의 배경 음악으론 아리랑이 사용됐다.
지난 13일 엘·오사카에 배달된 협박문에는 "예상하지 못한 사태를 경고한다. 전시 시설의 파괴, 인적 공격을 포함한다"고 위협하며 전시회 취소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협박문은 전시회에 불만을 품은 극우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지난 14일에는 '사린'(독가스의 일종)이라고 쓰인 문서와 액체가 든 우편물이 엘·오사카에 배달돼 근무 중이던 직원들이 대비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지 경찰은 배달된 액체는 위험 물질이 아니라 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전시회 개최 소식이 전해진 이후 극우세력의 항의가 쇄도하자 엘·오사카 시설 관리자는 지난달 25일 전시장 이용 승인을 취소한 바 있다.
이에 반발해 현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표현의 부자유전·간사이 실행위원회'는 소송을 제기했고, 오사카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은 잇따라 전시장 사용을 허가해야 한다며 실행위 측의 손을 들어줬다.
우여곡절 끝에 열리게 된 이번 전시회는 18일까지 계속된다.
개막 첫날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실행위의 한 관계자는 극우세력의 협박이 계속되는 상황에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번 전시회를 개최했다"며 개최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13개 작가팀의 25개 작품이 전시됐다.
안세홍 작가가 아시아 각지에서 촬영한 사진 연작물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도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실행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의 일환으로 50분 단위로 관람 시간대 수용 관객을 50명으로 제한했다.
실행위 관계자는 "오늘 오전 10시 개막인데 아침 8시부터 관객들이 찾아와 줄을 섰다"며 지역 주민들이 큰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개막했다가 폭죽 추정 물질 배달 사건으로 8일 중단된 '표현의부자유전·나고야'에서 전시된 작품 대부분이 표현의부자유전·오사카에서 다시 전시됐다.
이번 전시회에 영상물 작품을 낸 시마다 요시코 작가는 연합뉴스에 '표현의부자유전·도쿄' 개최가 극우세력의 방해로 연기되고 표현의부자유전·나고야가 중단된 것을 언급하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사카에서 전시회가 개최돼 기쁘다"며 "많은 분이 오셔서 관람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표현의부자유전·오사카가 열리는 엘·오사카 앞에선 연일 극우세력의 전시회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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