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대유행, 은행 사상 최대 실적 등에 연장 가능성 커져
(서울=연합뉴스) 금융팀 = 지난해 초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은행권이 원금 만기와 이자 납기를 미뤄준 대출 규모가 10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각 6개월씩 만기 연장·납입 유예 시한이 늦춰졌고, 다시 9월 말 기한이 임박했지만, 은행권과 금융당국의 분위기로 미뤄 세 번째 연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어려움이 커진데다, 지난 상반기 줄줄이 '역대 최대' 이익을 낸 금융그룹들이 당국의 '고통 분담' 요청을 잘라 거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은행권은 특히 이자조차 못 내는 한계 기업에 대해서는 부실 위험 관리 차원에서 일괄적 상환·유예 재연장보다는 '연착륙' 프로그램이라도 먼저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유예된 이자 뒤 원금까지 110조 잠재적 부실 대출
은행권은 지난해 2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 방침에 따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원금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 상환도 미뤄줬다.
25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관련 여신 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이달 22일까지 만기가 연장된 대출(재약정 포함) 잔액은 모두 99조7천914억원(41만5천525건)으로 집계됐다.
대출 원금을 나눠 갚고 있던 기업의 '분할 납부액' 8조4천129억원(1만4천949건)도 아직 받지 않았고(원금상환 유예), 같은 기간 이자 549억원(4천794건)의 납부도 유예했다.
이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납기가 연장된 대출과 이자의 총액 규모는 108조2천592억원에 이른다.
더구나 중소기업·소상공인 코로나19 지원 대출의 금리가 보통 2∼3% 수준인 점을 고려해 총 이자 유예액(549억원)에 평균 2.5%의 금리가 적용된 것으로 가정하면, 은행권이 유예해준 이자 뒤에는 상환 가능성이 불투명한 2조1천960억원도 딸린 셈이다.
결국 현재 5대 은행은 코로나19와 관련된 약 110조원 이상의 대출을 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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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 은행 코로나19 관련 여신 지원 실적(단위: 억원)│
│ ※ 각 은행 자료 취합│
│* 만기연장금액은 코로나 직간접 피해기업 지원실적(피해업종·취약등 │
│급 차주 포함)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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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 만기 연장 │ 분할 납부 유예 │ 이자 유예 │ 총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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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수 │ 금액 │ 건수 │ 금액 │ 건수 │ 금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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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5,525│ 997,914│ 14,949│ 84,129│ 4,794│ 549│ 1,082,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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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권 "당국과 논의 중…4차 유행 등에 재연장 가능성 커"
9월 말 세 번째 만기 연장·납입 유예 시한이 다가오면서, 최근 금융당국과 은행권도 재연장 여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달 중순부터 당국과 개별 시중은행 담당 임원들이 면담 등을 통해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유예 관련 의견을 서로 교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은행권은 결국 '3차 연장'이 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코로나19 지원이 연장될 수 있다는 신호를 은행권에 계속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지난 3월 연장하면서 '이게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당국이) 최근 관련 자료도 계속 내라고 요청하는 것을 보면 재연장할 것 같다"며 "4차 유행에 거리두기도 4단계 상태인데, 갑자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대출과 이자를 갚으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구나 은행 입장에서는 지난 상반기 '최대 순이익' 실적까지 발표된 만큼 당국의 요청과 여론 등을 고려할 때 재연장을 거부하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다만 은행은 상당수 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원금과 이자를 다시 미뤄주더라도, 적어도 이자 유예 기업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재연장'보다는 대출 연착륙 또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당장 이자도 못 내겠다'는 기업은 긴급 조치가 필요한데 이자 유예로 '연명치료'만 해도 되는지 면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는 데다, 한계기업 입장에서도 유예기간이 끝났을 때 목돈이 된 이자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당국 기류도 달라져…"9월 종료 후 연착륙"→"코로나 상황 봐야"
'3차 연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기류도 뚜렷하게 달라졌다.
3주 전까지만 해도 만기 연장·이자 상환 유예가 9월 말로 종료되는 것이 기정사실로 여겨졌지만, 최근 관계자들의 언급이 "알 수 없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 등으로 바뀌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주 내부 회의에서 '만기 연장, 이자 상환유예를 종료할지 또는 추가 연장할지 지금 당장 언급하기는 쉽지 않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는 올해 3월 두 번째 연장 발표와 함께 '대출자 연착륙 지원 5대 원칙'을 제시하며 9월 종료에 무게를 뒀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연착륙은 종료와 정상화를 전제로 한 표현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아주 나빠지면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지금으로선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될 때까지 시간을 끌며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 내부에서도 한계에 이른 자영업자의 대출 원금과 이자를 계속 미뤄주면 이들을 더 갚은 빚의 수렁으로 밀어 넣고 부실 채권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만큼 연장과 유예를 9월 말부터 단계적으로 종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과 내년 대선 등을 고려할 때 여론과 정치적 압박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금융그룹의 배당 확대, 커지는 은행 예대마진 등이 추가 연장 여론을 스스로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권이 상반기 실적 '잔치'를 벌이며 고(高)배당을 추진했다"며 "은행권이 그런 여유를 부릴 정도로 상황이 좋으니 어려운 소상공인을 위해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연히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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