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중국 외교 정책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자성어는 '구동존이(求同存異)'다.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획일주의에 반대하고, 포용성에 방점을 찍는다는 긍정적 의미가 담긴 말이다. 특히 다자주의가 강조되는 현재 국제사회 분위기상 반론이 힘든 원칙일 수 있다.
그러나 단어 자체의 뜻보다는 중국 정부가 구동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는 내부 문제에 대한 외부의 지적에 맞서는 방어 논리로 구동존이를 사용해왔다.
'남의 문제까지 간섭해봤자 서로 도움 될 일이 없으니, 서로 지적은 그만두고 이익이 될만한 문제부터 함께 논의하자'는 식이다.
최근 중국이 외부를 향해 '존중과 인정'을 요구하는 내부 문제는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박해, 홍콩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에 대한 탄압이다.
신장 위구르족 자치지역에서는 중국 정부가 100만 명 규모의 수용소를 설립하고, 소수민족에 강제노동을 부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홍콩에선 중국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신문사의 사주와 편집국장, 수석 논설위원 등이 체포됐고, 결국 신문 폐간이 결정됐다.
신장 지역의 위구르족 인구는 1천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인구는 7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2천만 명 이상의 인권과 직결된 문제를 '이(異·다름)'라는 단 한 글자로 치부한 셈이다.
그러나 소수민족 100만 명이 강제노동에 동원됐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 사안은 중국이 원하는 대로 '다름'으로 인정하고 넘어갈 하찮은 문제가 될 수 없다.
26일 중국 톈진(天津)에서 '구동존이'를 주장하는 중국 측과 회동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가 유엔 인권 선언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인권은 단지 내부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약속"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는 국가 내부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함께 대처해야 할 보편적 사안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G2로 꼽히는 경제대국 중국이 그럴듯한 사자성어를 앞세워 국제사회의 지적에 맞서는 모습은 위상에 맞지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에 대해 적합한 사자성어는 '구동존이'가 아니라 '수오지심(羞惡之心·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함)'이다.
중국도 이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타국 정치인 발언 내용까지 간섭을 시도하면서 정작 자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지적에는 '레드라인' 운운하며 국제사회의 긴장감을 높이는 것도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자성어는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 쓸 수 있는 표현은 '내로남불'이다.
kom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