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엔 "아프간 무력 장악하면 '왕따 국가'될 것" 경고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인도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현지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측 대표단과 회동, 중국의 신경을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로이터통신은 28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을 인용해 블링컨 장관이 이날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응고두프 동충 티베트망명정부(CTA) 대표와 만났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번 만남이 2016년 미국 워싱턴DC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달라이 라마가 만난 이후 가장 중요한 접촉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양측이 이날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양측의 만남 자체에 대해 중국은 상당한 거부감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 침공 후 탈출, 1959년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우고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끌어왔다.
이에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조국 분열 활동가'로 규정하는 등 그간 그의 활동에 극도의 불쾌감을 드러내왔다.
와중에 미국은 티베트의 인권 문제 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중국의 반발을 사왔다.
지난해 1월에는 미국 하원이 '티베트 정책·지지 법안'을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인도도 최근 달라이 라마와 관계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6일 자신의 트위터에 "달라이 라마의 86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와 전화 통화했다"는 글을 올리며 2014년 취임 후 처음으로 달라이 라마와 대화한 것을 공개적으로 확인해 주기도 했다.
모디 정부는 2019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의 영향력을 고려해 티베트 망명 정부와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국경 문제로 지난해부터 중국과 충돌한 후 달라이 라마와의 관계를 다시 다지려는 모양새다.
전날 뉴델리에 도착한 블링컨 장관은 이날 S.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부 장관과도 면담했다.
두 장관은 이 자리에서 아프가니스탄 치안 상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공급, 인도 내 인권 문제, 기후 변화 대응 등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프간의 경우 지난 5월부터 미군 철수가 본격화되면서 최근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급격하게 세력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자이샨카르 장관과 합동 기자회견에서 "탈레반이 무력으로 아프간을 장악하고 자국민에게 잔혹행위를 할 경우 '왕따 국가'(pariah state)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에서 공세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은 여전히 아프간과 깊게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여러 형태로 아프간 정부를 지원 중"이라며 협상 만이 아프간 평화를 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프간 문제의 경우 인도 정부는 그간 '앙숙'인 파키스탄과 밀접하다는 점 등으로 인해 탈레반을 공식 외교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아프간 정부만 상대하며 현지 인프라에 3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지만 최근 탈레반의 세력이 커지자 비밀리에 탈레반과도 접촉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남아시아 지역 상황이 급변하는 가운데 미국은 이번 블링컨 장관의 방문을 통해 인도와 관계를 더욱 강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는 미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대중 포위망'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국가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중립 외교를 표방해왔지만 최근에는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 협의체 쿼드에 가담한 상태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양국 관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모디 총리 등과도 면담한 후 이날 오후 쿠웨이트로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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