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경화에 민영경제 위축 우려 제기되자 "재산권 보호" 주장
관영매체 논평에 당국자 금융기관 '설명회'까지…투자자들은 깊은 회의감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거대한 사교육 시장을 송두리째 소멸시켜버리는 중국 당국의 초강경 조치가 '규제 공포'를 불러와 세계 증시에서 중국 기업의 주가가 대폭락한 가운데 중국 정부가 자본시장 발전 등 자국의 개혁개방 정책 기조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서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관영 신화통신은 29일 오전 0시 1분(현지시간) 송고한 '중국 증시 초점 분석'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개혁은 발전을 촉진하고 활력을 불러일으킨다"며 "중국 자본시장은 부단히 개혁 중에서 발전하고 있으며 이런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부인 국무원 직속 기관인 신화통신은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진 관영 매체다. 중요 현안과 관련해 이들 매체가 낸 입장을 내면 이는 곧바로 정부나 당의 '정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신화통신은 "최근 잇따른 인터넷 플랫폼 기업과 학원 등 산업의 감독관리 정책과 관련해 시장에서 일부 의문과 우려가 있다"면서도 "인터넷 플랫폼 경제와 학원 등 산업에 대한 감독관리 정책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반드시 중국 경제 발전의 큰 흐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화통신은 "인터넷 플랫폼 경제와 학원을 대상으로 한 감독관리는 해당 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것"이라며 "이는 해당 산업을 제약하고 압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경제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에 이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정'(司正)에 가까운 고강도 규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1천200억 달러(약 138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중국의 사교육 시장을 사실상 초토화할 초강력 규제까지 나오자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좌경화 움직임 속에서 최근 중국 안팎에서는 민영 경제 부문이 급속히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신화통신은 이런 우려와 관련해 "마땅히 계약 정신을 존중하고 재산권을 보호하는 가운데 각종 소유제 경제가 법에 따라 공평하게 생산 요소를 활용하고 공정한 시장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며 "개혁개방이라는 큰 방침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발전 방향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날에도 증권시보(證券時報) 등 증시 전문 관영지들을 앞세워 시장 불안 달래기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전날까지만 해도 중국 관영 매체들은 증시 폭락의 원인을 투자자들의 '정책 오독'으로 진단하면서 자국 경제의 기초여건이 튼튼하다는 논지를 주로 폈다.
이날 신화통신의 논평은 한발 더 나아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지속되어온 관(官)과 시장의 긴장과 균형이 일거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시장의 근본적인 우려 지점을 정면으로 짚으며 시장 민심 수습에 나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울러 증권감독 당국 고위 관계자도 나서 향후 규제가 지나치게 거칠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 팡싱하이(方星海) 부주석(차관급)은 28일 밤 골드만삭스 등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투자기관들과 온라인으로 긴급히 진행한 '설명회' 성격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향후 신규 정책 도입 전에 시장 충격을 검토하고, 시장이 이를 소화할 충분한 시간을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팡 부주석은 또 이 회의에서 자국 기업이 상장 요건을 충족하면 원칙적으로 미국 증시 상장을 계속 허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은 최근 미국에 상장한 디디추싱(滴滴出行)을 대상으로 인터넷 안보 심사를 개시한 데 인터넷 안보 심사 규정을 고쳐 사실상 해외 상장을 허가제로 바꿔 민감한 기술 정보를 가진 자국 기술기업의 미국 상장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바 있다.
신화통신 역시 이날 새벽 발표한 논평에서 원칙적으로 미국 상장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란 입장을 표명했다.
신화통신은 "증감위는 여전히 기업의 상장 장소 선택에 개방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기업이 법과 규정에 따라 두 개의 시장, 두 개의 자원을 이용해 발전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기존 경제·사회 제도 속에서 합법적으로 사업을 벌이던 사교육 관련 기업의 사업 기반이 일거에 무너지는 사태를 목도한 중국 투자자들은 당국에 깊은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는 중국 당국이 이제 마음만 먹으면 통상의 규제 수준을 넘어 굴지 기업은 물론 거대 산업 하나를 순식간에 소멸시킬 수 있다는 공포감이 급속히 고개를 들면서 중국 정부의 사교육 금지 조처가 하나의 중국 자본시장의 역사에서 새로운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는 분위기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악랄한 나치 전범의 심판조차도 증거와 절차에 따라 수년에 걸쳐 이뤄졌는데 지금 한 장의 문건으로 한 개의 산업에 사형을 선고해 수조 위안(수백조원)이 불타 잿더미가 됐다"며 "도박장조차도 수시로 규칙을 바꾼다면 누가 가서 놀겠는가"라고 비판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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