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금 5조…SKIET·카카오뱅크 등 10분의 1에도 못미쳐
공모가 49만8천원, 주가로는 유가증권시장에서 15번째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이미령 기자 = 하반기 기업공개(IPO) '초대어'로 꼽히던 게임업체 크래프톤이 일반 공모주 청약에서 예상보다 매우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무엇보다 1주당 49만8천원이라는 높은 공모 가격이 투자자의 참여를 주춤하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3일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주 청약을 마감한 결과 크래프톤의 증거금은 5조358억원으로 집계됐다. 경쟁률은 7.79대 1이었다.
이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80조5천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63조6천억원)는 물론 중복청약이 금지된 카카오뱅크(58조3천억원)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크래프톤은 중복 청약이 가능한 마지막 IPO 대어로 꼽혀왔다.
이 같은 부진의 주요 배경으로는 공모가 수준이 높다는 점이 거론된다.
크래프톤의 공모가는 증권신고서 제출 단계에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당초 공모가는 45만8천원∼55만7천원으로 공모 예정 금액은 4조6천억원∼5조6천억원이었다. 이는 국내 IPO 사상 최대 규모였다.
특히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비교 대상으로 월트디즈니, 워너뮤직그룹 등 글로벌 콘텐츠 업체 2곳을 포함하면서 공모가를 올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낳았다.
결국 금융감독원이 정정 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크래프톤은 공모가의 희망 범위를 40만원∼49만8천원으로 낮췄다. 수요예측을 통해 최종 공모가는 49만8천원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수준 역시 현재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주가와 비교했을 때 15번째로 높은 가격이어서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부담은 컸을 것으로 보인다.
SK바이오사이언스, SKIET 공모 청약에는 참여했으나 이번 크래프톤은 청약하지 않은 투자자 이모(28)씨는 "사실 올해 진짜 공모주 대어는 크래프톤이라고 생각했는데 공모가 산정부터 너무 비싸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공모가가 너무 비싸서 '따상'(상장 첫날 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결정된 후 상한가)과 같은 차익을 노릴 수 없을 거 같았다. (주가가) 공모가 이상으로 갈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공모가격을 크게 낮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모 물량을 줄였다"면서 "이런 부분을 보면 구주 매출에 대한 가격을 높게 받겠다는 의지가 기업이나 주관사 쪽에서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기관 수요예측에서도 '공모가 고평가'라는 부분이 수요예측 결과로 어느 정도 나왔다"면서 "일반 개인 투자자도 그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결과 가격에 대한 부분(문제)이 흥행 실패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공모가 논란은 결국 기업가치 자체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면서 단기 공모주 차익을 노린 투자자뿐만 아니라 크래프톤에 장기 투자하려던 개인의 발걸음마저 되돌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카카오페이, LG에너지솔루션 등 대어들이 줄줄이 상장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번 크래프톤의 흥행 부진이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이미 금감원으로부터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받은 상태다. 앞서 카카오페이는 미국 페이팔과 스퀘어, 브라질 파그세구로 등 외국 금융 플랫폼 기업 3곳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공모가 희망 범위를 6만3천원∼9만6천원으로 산정한 바 있다.
크래프톤이 공모가 논란을 겪은 만큼 다른 대어 기업들도 공모가 산정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점쳐진다.
고경범 연구원은 "공모 가격의 적정성에 대해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상장 추진 회사나 주관사들이 인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개별 종목의 공모가 적정성 논란이 하반기 공모주 투자 추세(레짐)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카카오뱅크나 크래프톤의 주가 변동성에 따라 하반기 IPO 시장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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