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아프간 카불 공항…비행기에 매달렸다가 추락사(종합3보)

입력 2021-08-17 01:13   수정 2021-08-17 12:27

'아수라장' 아프간 카불 공항…비행기에 매달렸다가 추락사(종합3보)
활주로에 시민들 몰려들자 미군 발포…미 고위 당국자 "7명 사망"
아프간 공항 지키던 미군, 무장한 남성 2명 총으로 사살하기도


(자카르타·파리=연합뉴스) 성혜미 현혜란 특파원 =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하자 수도 카불 공항은 필사의 탈출을 위해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등 극도의 긴장감이 이어졌다.
수천 명의 시민이 한꺼번에 활주로로 몰려들자 이들을 해산하려고 미군이 발포하면서 일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월남 패망 당시 '사이공 탈출'보다 더 급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16일 톨로뉴스와 외신들을 보면 예상 밖의 빠른 속도로 친미 성향 아프간 정부가 붕괴하고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자 카불 시민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날 날이 밝기도 전에 수천 명의 시민이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트위터 등 SNS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끝도 없이 많은 시민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탕, 탕'하는 총성이 산발적으로 들리는 가운데 아이를 업거나 안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린다.
게시물 작성자는 "시민들이 패닉(공포)에 빠져 공항을 향해 달려가고, 미군이 총을 발사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슬프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동영상에는 기관총을 난사하는 소리가 들리고, 시민들이 공항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담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항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렸고, 시민들이 활주로를 장악하고 문이 열린 여객기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어떻게든 여객기에 타려고, 탑승 계단에 거꾸로 매달린 절박한 모습도 보였다.

밀려든 인파로 도저히 여객기가 뜰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공항 당국은 모든 민항기의 운항이 중단됐다고 이날 오후 발표했다.
아울러 아프간 항공 당국은 카불 영공 통제가 군에 넘어갔다며, 항공기 노선 변경을 권고했고 이미 미국 유나이티드항공과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등 여러 외항사가 아프간 영공을 피하기 위한 항로 조정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은 "미군의 발포로 공항에서 아프간인 여러 명이 사망했다고 보안군 소식통이 전했다"고 보도했다.
SNS에는 "미군이 카불 공항에서 질서 유지를 하려고 발포하는 바람에 민간인이 죽었다"는 글과 함께 여성을 포함한 여러 명이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카불 공항을 지키는 미군은 지난 24시간 사이 공항에서 무장한 남성 2명을 사살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한 미국 관리는 로이터에 "공항에 몰려든 군중이 통제 불능 상태였다. 발포는 혼란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공항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아프간에 머물기로 한 사람은 모두 카불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한다. 민간인은 해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카불 공항에서 벌어진 혼돈을 두고, 많은 이들이 1975년 남베트남 패망 직전 당시 '사이공 탈출'을 떠올렸다.
게다가 비행기 아래쪽에 매달려서라도 탈출을 시도했던 시민들이 추락해 숨지는 참극이 벌어졌다고 톨로뉴스 등이 전했다.
이들 매체는 "항공기 바퀴에서 두 명이 추락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며 "세 명이 매달린 채 이륙한 상황에서 두 명이 추락해 숨진 것을 공항 인근 주민이 확인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고위 당국자는 AP 통신에 이날 카불 공항에서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추락한 여러명을 포함해 총 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군 관계자를 인용해 최소 3명이 미군 수송기에 매달렸다가 활주로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이처럼 수도 카불의 끔찍한 상황이 전해지면서 일각에서는 '사이공 탈출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WSJ는 이날 미군 철수 이후 삽시간에 탈레반에 함락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스테로이드를 맞은 사이공(Saigon on Steroids)"이라고 묘사했다.

카불 시내를 빠져나가는 차량 행렬로 도로 곳곳이 꽉 막힌 영상도 잇따랐다.
앞서 거점 도시가 잇따라 탈레반 수중으로 넘어가자 '안전한' 수도로 도망 왔던 피란민들의 경우 더는 갈 곳이 없다며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탈레반은 과거와 달리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겠고 약속했지만, 과거 탈레반이 통치했던 5년 동안 극단적인 샤리아(이슬람 율법) 적용을 경험했던 시민들은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다.
탈레반 통치 당시에는 음악, TV 등 오락이 금지됐고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하는 가혹한 벌도 허용됐다.
게다가 수도 카불 시민들은 그동안 미군과 국제동맹군, 국제 NGO단체와 협업하거나 외국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한 경우가 많기에 탈레반이 '부역자'라며 자신들을 처단할까 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noano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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