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된 1천700조 가계대출…뒤늦은 사냥 성공할까

입력 2021-08-20 05:30   수정 2021-08-20 08:00

'괴물'이 된 1천700조 가계대출…뒤늦은 사냥 성공할까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우리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코로나19가 아니라 가계부채다.
코로나19가 초래한 경제·민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풀린 어마어마한 유동성이 엉뚱하게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쏠리면서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집값이 폭등했다.
가계부채가 국가의 경제·금융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는 괴물로 몸집을 키우고, 치솟은 집값이 경제 문제를 넘어 사회·정치적 갈등으로 비화하자 위기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 괴물이 된 가계부채…7월 말 현재 1천700조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전체 금융권의 가계부채 증가액(잠정치)은 78조8천억원이다. 작년 말 가계부채 잔액이 1천631조5천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7월 말 현재 가계부채 잔액은 1천710조3천억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의 1천504조6천억원보다 13.6%, 205조7천억원 불어난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1천666조원으로 1년 전보다 9.5% 144조2천억원 늘었다. 증가율, 증가액 모두 사상 최대다.
시중에 풀린 통화량도 엄청나다. 넓은 의미의 통화량인 M2는 6월 평균 3천411조8천억원으로 작년 12월(3천191조3천억원)보다 6.9%(220조5천억원) 늘었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2월(2천909조1천억원)과 비교해서는 17.2%(502조7천억원) 급증했다.
M2에는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이상 M1) 외 MMF(머니마켓펀드)와 CD(양도성예금증서), 만기 2년 미만 금융채와 금전신탁 등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이 포함된다.
이렇게 풀린 유동성이 실물 경제에 흘러들어 기업과 민생의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려 집값을 폭등시키면서 금융 불안정을 키웠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 주택 가격은 작년 동월 대비 14.26% 상승했다. 이런 상승 폭은 2002년(16.57%) 이후 최대다.
아파트 기준으로 전국 평균 매매가격은 작년 7월 4억1천만원에서 올해 7월에는 5억1천만원으로 1억원이 뛰었고, 서울은 9억5천만원에서 11억5천만원으로 2억원이 치솟았다.

◇ 부동산발 위기론에 뒤늦게 칼 뽑은 정부
가계부채가 폭발하고 집값이 천장을 뚫고 오르자 위기론이 정부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일 취임식에서 대출 부실과 자산의 가격조정 등 다양한 리스크가 일시에 몰려오는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17일 회의에서 "과도한 신용 증가는 버블의 생성과 붕괴로 이어지고, 이는 금융부문 건전성 및 자금 중개기능 악화를 초래해 실물경제 성장을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경제 주체들의 수익 추구 행위, 레버리지(차입을 이용한 투자)가 과도하게 진전된다면 언젠가는 조정을 거치고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결국 정부는 가계부채 억제에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내년 봄 대선을 앞두고 대출을 세게 죄는 것엔 정치적 부담이 따르지만, 집값을 잡지 못하면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고승범 후보자는 "가계부채 관리는 지금 이 시기에 금융위원장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규정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은행을 비롯한 전 금융권을 창구 관리 수준으로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월별로 9% 안팎을 오르내리는 가계부채 증가를 관리 목표(5∼6%) 내에서 통제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올해 가계대출 관리에 구멍을 낸 2금융권의 방만한 대출에 철퇴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1∼7월 2조4천억원이 줄었던 2금융권 가계대출은 올해 같은 기간엔 무려 27조4천억원이 늘었다.
금융위는 3년에 걸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기로 하고 7월부터 투기 과열 및 조정대상지역의 주택담보대출이나 1억원 초과 신용대출에 DSR 40%를 적용했는데 이를 당초 예정보다 앞당겨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종전 연 소득의 1.5∼2배 수준이었던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축소할 것을 금융권에 주문했고, 차주가 주택담보대출 약정을 위반할 경우 예외 없이 대출을 회수하도록 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초강력' 대응을 요구받은 NH농협은행은 오는 11월까지 신규 가계 담보대출을 전면 중단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NH농협은행은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이미 넘어섰다.
◇ "방향 맞지만 젊은층이나 취약계층 피해 우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의 위험이 워낙 심각한 상황이어서 정부의 적극적인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했다.
문제는 코로나19 감염자가 다시 급증하고 실물 경기 회복세가 둔화 조짐을 보이는 데다 미국의 조기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움직임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투명성이 짙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가 아직 진행형인데 가계대출 문제가 급하다고 해서 거칠게 접근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컨대 어떻게든 집을 갖겠다는 2030 젊은층의 의지가 강하고 이는 분명한 실수요인데 이들에 대한 대출을 억제할 경우 주택시장에 대한 접근 자체가 막혀 결국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취약계층의 대출 접근은 가급적 건드리지 않고 투기적 대출 수요만 억제하겠다고 하지만 옥석 가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생계비로 쓰거나 점포 운영비로 충당하는 자영업자도 있을 수 있고, 주식 등 다른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대출 창구에서 어느 게 투기성인지 옥석을 가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출 총량을 엄격하게 관리하다 보면 젊은층이나 취약계층의 대출 접근이 제약될 수 있다"면서 "금융당국도 이런 부분에 각별하게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고 했다.
가계대출의 덩치가 워낙 커 금융당국의 미시적 억제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근본적으로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 선행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안동현 교수는 "가계대출의 총량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올리고 금융당국이 정교한 미시 대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주문했다.
kimj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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