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수에 중앙아 패권 경쟁서 러시아 '안보 제공' 우세
NYT "러, 중앙아서 빠르게 위치 회복할 것" 진단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미군의 철수에 이어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함에 따라 러시아가 국경 인근에 장갑차 등을 수백 대 배치하면서 중앙아시아 패권을 넘보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아프간 붕괴로 러시아가 미국 대신 파키스탄, 중국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책임지게 됐는데 러시아가 경쟁국 중에서는 안보 제공 면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NYT는 아프간 정부가 붕괴하고 현지 미국인들도 서둘러 대피에 나선 가운데 수백 대의 러시아 장갑차와 포대가 아프간 인근 타지키스탄 국경에서 불과 수 마일 거리에서 선명하게 보였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한 장군은 탈레반 진지에서 불과 12마일 떨어진 곳에서 고강도 군사 훈련을 진행 중이라고 확인했다.
이를 두고 이번 훈련은 러시아가 잠재적인 중앙아시아의 보호 세력으로 등장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중앙아시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에서 러시아가 아프간의 혼란 속에 압도적인 선수로 등장했으며, 안보 분야에서만큼 강력한 영향력이 있다는 게 NYT의 진단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17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미군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익숙했던 세계에서의 위치를 포기하고 있는 나라들"이라며 러시아가 대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NYT는 중앙아시아 안보 문제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강화되는 것은 탈레반의 집권으로 야기된 광범위한 변화의 일부로 봤다. 서방 군병력이 아프간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철수함에 따라 미국과 인도 대신에 러시아가 지역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쿨리 컬럼비아대 해리먼연구소 소장은 "나는 지금 중앙아시아를 탈서방이나 탈미국 지역으로 생각한다"면서 "즉 미국 없이 바뀌는 곳"이라고 말했다.
NYT는 러시아가 구소련 시절 10여 년간 처참한 대가를 치르고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퇴각했지만, 미군의 이번 아프간 철수는 '미국은 믿을 수 없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 됐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러시아는 탈레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면서 서방 외교관들이 카불에서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탈레반의 보호 속에 러시아 관리들이 여전히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아프간 국경에서 행해진 러시아의 군사훈련은 탈레반이 러시아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응징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무력 시위로 볼 수도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러시아 전문지 페르가나의 다니엘 키셀료프 편집장은 "러시아는 탈레반과 대화할 수도 있지만 주먹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패권을 놓고 러시아는 경제 지원이라는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앞세운 중국과 치열한 경쟁에 여전히 직면해 있다.
미국 석유회사 엑손은 카자흐스탄에서 원유 시추 사업을 하고 있으며 중국과 타지키스탄은 지난 17일 국경 합동 훈련을 발표하는 등 복잡한 국면이다.
NYT는 그런데도 러시아가 안보 면에서 우세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봤다.
왜냐하면 중앙아시아의 미군 기지 등은 구소련이 아프간을 침공을 위해 중앙아시아에 세운 거점에 대부분 들어섰는데 이제 미군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미군 기지는 이미 폐쇄됐다.
미국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는 점도 러시아에는 기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올여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 아프간 난민을 받는 대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타지키스탄이 미군 철수 기간 접근을 거부한 지역에서는 러시아 탱크와 장갑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도로를 따라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 콘스탄틴 코사체프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아프간 정부가 붕괴하자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하는 군사 동맹인 집단 안보 조약 기구를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의 안드레이 세렌코 전문기자는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빠르게 위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우산 대신 러시아라는 안보 우산을 씌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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