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손에 죽을 것"…아프간 필사의 탈출행렬

입력 2021-08-21 08:55   수정 2021-08-21 11:57

"탈레반 손에 죽을 것"…아프간 필사의 탈출행렬
사면령과 모순되는 폭력·위협 횡행…공포정치 본격화
카불공항 최루탄 발사에 아수라장…탈레반, 뉴스 방송에 여성앵커 출연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아프간인들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탈레반이 사면령까지 내리며 보복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아프간인들의 외국 대피도 막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잔혹한 폭력과 위협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서방 언론들은 보도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보도에 따르면 영국군 통역사로 일하던 우스만(가명)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와 이웃 몇 명과 함께 대피하던 중 탈레반을 맞닥뜨렸다.
탈레반은 집안에 사람들이 감춰둔 무기나 문서, 정부차량이 없는지 수색하고, 누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나 정부를 위해 일했는지를 캐묻고 다녔다고 한다.
우스만은 이들을 피해 벽을 뛰어넘어 달아났다면서 "내가 그들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달아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외국군대의 통역사였던 하쉠(가명)은 한 대도시의 아파트에 은신 중이다.
그는 BBC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문서를 파쇄한 뒤 카불 공항에 달려갔지만 탈레반이 "미국인들이 사람들을 외국으로 대피시키겠다는 가짜뉴스가 퍼져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공항에 오지 말라고 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공항을 통한 탈출에 실패한 하쉠은 "다른 나라로 달아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탈레반은 카불 공항에서 외국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을 막지 않고 있다고 공언하지만 실제로는 탈레반의 방해에 가로막혀 공항 입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날 카불 공항 일대에는 탈출을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됐고 경고사격과 최루탄 발사로 사람들을 해산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미국의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하기도 했다.
경고사격이나 최루탄 발사의 주체가 미군인지, 다른 외국군대인지, 아니면 탈레반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탈레반의 집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은 외국 군대나 아프간 정부를 위해 일한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각종 내외신 언론에서 일한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언론사에서 일했다는 아이다(가명)는 BBC에 "탈레반이 나와 남편을 찾으러 우리 집에 두 차례나 찾아왔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우리의 소재를 물었고, 찾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막 문자메시지도 보냈다"고 전했다.



사미라(가명)라는 여성은 "탈레반은 정부, 기자, 여권운동가들을 색출하고 있다. 우리는 비자가 없어서 공항에도 갈 수 없다. 돈도 없고 아무런 지원도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 전역에서는 탈레반의 살인, 구금, 협박 등 사면 약속과 모순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최근 조사를 통해 탈레반이 지난달 초 가즈니주에서 하자라족 민간인 9명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이슬람 시아파인 하자라족은 아프간에서 인구가 3번째(9%)로 많지만, 탈레반의 주축을 이루는 이슬람 수니파 파슈툰족(42%)에 의해 줄곧 탄압을 받아왔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전날 탈레반이 자사 기자를 잡기 위해 그의 집에 들이닥쳐 가족 1명을 사살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이미 사회활동이 활발한 여성들에 대한 탄압에 들어갔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아프간 국영방송의 RTA의 여성 뉴스진행자 샤브남 다우란과 카디자 아민은 방송을 위해 출근했지만 탈레반이 가로막아 사무실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탈레반이 임명한 새 RTA 국장과 잠시 얘기를 나눈 이들은 방송 출연을 못 하게 됐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번 사건은 여성이 정부와 공적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밝힌 탈레반 고위 관리들의 발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WP는 지적했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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