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저항군 입대해 스파이로 활약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가수 겸 댄서로 활동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저항군으로 참전한 조세핀 베이커(1906∼1975)가 흑인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 프랑스 팡테옹에 안장된다.
현재 모나코에 잠들어있는 베이커를 팡테옹으로 이장하는 행사가 11월 30일 개최된다고 일간 르파리지앵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베이커는 가난한 살림살이에 7살 때부터 부잣집 청소부로 일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고 15살에 두 번째 결혼을 하는 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사랑한 베이커는 길거리 극단에서 활동하다가 더 넓은 무대 위에 서고 싶은 마음에 남편을 고향에 남겨둔 채 뉴욕 브로드웨이로 떠났다.
그곳에서 유럽에 진출해보자는 한 프로듀서의 제안을 받아들여 프랑스 파리에 발을 들인 것이 1925년, 베이커가 19살 때였다.
베이커의 목소리와 춤사위는 파리를 사로잡았다. 유럽에서 순회공연이 이어졌고, 주연을 맡은 영화가 개봉했으며, 조세핀의 이름을 딴 화장품이 출시됐다.
1937년 세 번째 결혼으로 프랑스 국적을 얻은 베이커는 미국과 달리 인종 차별 없이 자신을 받아주는 프랑스에 감사함을 느끼며 프랑스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고 말하곤 했다.
베이커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저항군에 입대했다. 유럽에서 얼굴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조세핀은 명성 덕에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했기에 이를 활용해 스파이로 활동했다.
맨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잉크로 악보 위에 적은 지령을 아군에 전달했고, 독일 나치군 스파이 명단을 속옷에 숨긴 채 영국군에 넘기기도 했다.
전쟁 기간 베이커가 빌린 밀랑드 성은 프랑스 게릴라군의 은신처로 쓰였다. 무기를 숨겨놓거나, 나치군에 쫓기는 유대인이 몸을 피하는 공간이었다.
나중에는 밀랑드 성을 사들여 호텔, 수영장, 놀이공원 등을 갖춘 고급 레저시설로 운영했으나 경영난으로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다.
결국 1969년 성을 매각하고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베이커는 1975년 4월 9일 공연을 마치고 파리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사흘 뒤 숨을 거뒀다.
파리 중심가에 우뚝 서 있는 팡테옹에는 빅토르 위고, 볼테르, 에밀 졸라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인 80명이 잠들어있다. 이중 여성은 마리 퀴리, 시몬 베이 등 5명뿐이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