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파키스탄·터키 "더는 안 돼"…이란, 노동시장에 활용·포용적
독일, 난민위기 재발 방지 주력…프랑스, 불법 이주에 대응 단호
경제적 비용과 사회 불안 등을 이유로 대체로 수용에 부정적
(뉴델리·베를린·이스탄불·파리·테헤란=연합뉴스) 김영현 이율 김승욱 현혜란 이승민 특파원 = 지난 20년간 아프가니스탄이 정부군과 탈레반 간 내전 상태에 놓이면서 수백만 명의 아프간인이 난민으로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 타국에 난민 신청을 한 아프간인은 약 28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인접국인 파키스탄과 이란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독일·터키·프랑스 등도 상당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후 대규모 난민이 밀려올 것을 우려한 각국 정부는 아프간 난민에게 열어둔 문을 걸어 잠그는 모양새다.
일부 국가는 난민 수용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사회 불안을 이유로 아프간 난민 차단을 위해 국경에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에 들어가기도 했다.
◇ 파키스탄 "비공식 아프간 난민 300만 명…더는 여력 없어"
그간 수용한 아프간 피란민 수만 놓고 보면 인접국인 파키스탄이 단연 1위다.
UNHCR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아프간인 145만 명이 파키스탄에서 난민·망명 신청을 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이 수가 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처럼 많은 수가 파키스탄으로 이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당국이 경제적 이유를 들어 난민 수용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임란 칸 총리는 지난달 말 "파키스탄은 이미 300만 명의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였다"며 "우리 경제가 추가 유입 난민을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지난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할 즈음 아프간 난민의 주요 이동 통로인 북부 토르캄 등의 검문소를 폐쇄했다.
이후 다시 문을 열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훨씬 까다롭게 검문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에는 하루 6천∼7천 명이 토르캄 검문소를 통과했지만, 최근에는 절반으로 줄었다.
파키스탄은 국경에 철책을 치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국경 90% 이상에 철제 펜스를 설치했으며 나머지 지역 작업도 올해 말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중으로 구성된 이 펜스는 4m 높이로 윤형 철조망과 감시카메라 등이 설치됐다. 민간인이 뚫고 지나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 이란, 아프간 난민에 포용적…노동시장서 비중 커
이란의 농장이나 건설 현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인 노동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건물 관리인이나 부유층들이 고용하는 잡역부 역시 대부분 아프간인이다.
지난해 기준 이란에 공식 등록된 난민 수는 80만 명이며, 이 가운데 97.5%에 해당하는 78만 명이 아프간 사람들이다.
구호단체와 외신들이 추산하는 이란 내 아프간인은 300만 명에 달한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이란 노동시장에서 아프간인은 이미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이란 당국은 아프간인들의 '불법 체류'에 강력히 대응하지 않는다.
유엔난민기구도 난민에게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란의 정책이 "진보적이고 포용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란의 번창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탈레반이 아프간 대부분을 장악하자 이란 국경을 넘는 난민들이 급증하는 상황이다.
이에 이란 내무부는 국경지역 3개 주에 추가 난민 캠프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현재 이 계획은 잠정 보류됐다.
이란 적신월사(적십자에 대응하는 이슬람권 기구)는 탈레반의 카불 점령 후 넘어온 2천 명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3개월 안에 15만 명이 이란으로 넘어올 것으로 예측했다.
적신월사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아프간 난민들에게 지원할 음식과 생필품, 천막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남호라산주 등에 추가 난민 캠프 설치도 이란 정부에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 터키, 시리아 난민 최대 수용국…"아프간 난민 한 명도 못 받아"
세계 최대 시리아 난민 수용국인 터키는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터키의 집권당 정의개발당(AKP)의 외메르 첼릭 대변인은 2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터키는 난민 캠프가 아니다"라며 "아프간 난민을 단 한 명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기준으로 터키에 난민 또는 망명 신청을 한 아프간인은 약 13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난민 신청 없이 불법 체류 중인 사람을 포함하면 터키 내 아프간 난민 수는 약 30만∼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미 약 36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 중인 탓에 아프간 난민이 몰려들 경우 터키 정부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U 회원국인 그리스·불가리아와 국경을 접한 터키는 유럽행을 바라는 난민의 중간 경유지로 이용된다.
특히, 아프간 난민은 이란을 거쳐 터키에 입국한 후 난민 신청을 하지 않고 육·해로를 통해 그리스 입국을 시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가 고무보트 등에 의지해 터키와 그리스 사이 바다인 에게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거나,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돼 본국 송환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터키 내무부에 따르면 2019년 한 해에만 45만4천662명의 불법 체류자가 체포됐으며, 이 가운데 20만 명 이상이 아프간 출신이었다.
◇ 독일, 아프간 인접국 지원…2015년 난민위기 재발 방지 주력
독일은 북유럽 국가들과 함께 유럽행을 바라는 난민의 최종 목적지로 꼽힌다.
지난해 독일이 수용한 아프간 난민과 망명 신청자는 18만1천100명에 달했다.
지난해 말 현재 독일 내 난민은 121만636명, 망명 신청자는 24만3천157명에 달한다고 UNHCR은 집계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필두로 한 독일 정부는 UNHCR과 아프간 인접국에 대한 재정 및 물류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모두 1억 유로(약 1천373억 원)를 인도와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에 지원한다는 것이 독일 정부의 계획이다.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 대륙으로 밀려들었던 2015년 난민 위기가 재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시에는 난민 보호 기구에 대한 재정지원이 축소됐고, 이웃 국가 지원이 늦어 위기를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아울러, 독일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후 현지 협력 직원과 비정부기구 소속 인권·여성 활동가 등 약 1만 명을 아프간에서 빼 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이 전날까지 카불 공항을 통해 대피시킨 인원은 3천 명이며, 이 가운데 아프간인은 1천800명에 달한다.
◇ 프랑스, 아프간 출신 망명 신청 최다…불법이주에 단호히 대응
프랑스에서는 매년 1만여 명의 아프간인이 난민·무국적자 보호사무국(OFPRA)과 국가망명권법원(CNDA)에 망명을 신청하고 있다.
OFPRA가 지난 7월 발간한 연례보고서를 보면 2020년 프랑스에 망명을 신청한 9만6천424명 중 아프간 국적이 1만364명(10.7%)으로 가장 많았다.
작년 기준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아프간인은 1천83명이지만, '보완적 보호' 대상으로 인정받은 6천411명까지 합치면 총 7천494명이 프랑스에 머물 자격을 얻었다.
보완적 보호란 난민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본국으로 돌아가면 실질적인 위험이 있다고 판단할만한 근거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지위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경이 닫히는 바람에 전체 망명 신청이 줄어든 와중에도 아프간인은 오히려 전년보다 늘었다.
OFPRA는 지난해 탈레반의 공격이 강화되는 바람에 아프간 정세가 더욱 불안해졌고, 그 결과 프랑스 문을 두드리는 아프간인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6일 프랑스를 도운 아프간인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아프간에서 위협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불법 이주에는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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