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병원 침대에 기대 엄마의 다친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녀.
아이티 레카이에 사는 5살 유네카입니다. 25살 엄마는 지난 14일 아이티를 강타한 규모 7.2의 지진으로 많이 다쳤습니다.
유네카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아픈 엄마 옆에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갈 데가 없습니다. 지진으로 살던 집은 무너졌고, 아빠와 친척들은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AP통신이 소개한 유네카의 사연은 아주 특수한 사례는 아닙니다.
가난한 나라 아이티를 덮친 지진은 2천2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1만2천여 명이 다쳤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지진 발생 열흘이 훌쩍 넘었지만 지진 피해자들의 앞날은 여전히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긴 11년 전인 2010년 대지진의 피해도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황이니 당장 뚜렷한 대책이 생기길 기대하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반복된 재난 속에서 아이티인들이 배운 게 있다면 그 어떤 기대도 품지 말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외신 사진 속 아이티 이재민들의 모습은 '망연자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 무심히 걸터앉은 남성, 돌무더기가 된 집 앞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성의 얼굴엔 표정이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거대한 고민을 하기엔, 당장 오늘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은 어떻게 구할지, 오늘 밤은 어디서 비를 피해야 할지, 더 시급한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폐허가 된 집터에서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를 뒤지고 또 뒤지고, 얼마 안 되는 구호 물품에 기대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지진 이후 고통은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죽거나 다친 아이들도 있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유니세프는 이번 지진이 아이티 국민 120만 명에게 피해를 줬고, 이 중 54만 명이 어린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이재민 천막촌에서 만난 또래 아이들과 신나게 공놀이를 한 후에도 돌아갈 집은 없습니다. 비가 오면 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약한 천막 밖에는요.
배고픔에 지친 아이들은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다섯 아이와 함께 레카이의 천막촌에서 지내는 미셸은 로이터통신에 아이들이 음식을 찾아 이웃 마을까지 걸어갔다 왔다며 "내가 보낸 게 아니다. 애들이 배가 고파서 나한테 묻지도 않고 갔다"고 말했습니다.
아이티의 재난은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 자리를 빠르게 내줬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더 큰 위기가 펼쳐졌기 때문이죠.
국제사회의 지원은 이어지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게 피해자들에게 골고루 전달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지난달 대통령이 암살된 아이티는 지진 이전에도 이미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아이티의 봄은 언제쯤 찾아올까요? 표정을 잃은 어른들과 꿈을 잃은 아이들도 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