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테이퍼링에 앞서 선제적 정상화 시동…자금 유출 예방 효과 기대
코로나 재확산에도 '4% 성장은 무난' 판단한 듯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26일 무려 2년 9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것은 완화적 통화정책의 부작용으로 솟은 가계대출, 집값, 물가 등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지난해 역(-)성장까지 경험한 경기는 이제 '초저금리'의 지원이 필요 없을 만큼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올랐다는 게 한은의 인식이다.
◇ 가계 빚 증가속도 역대 최대, 수도권 집값 상승률 13년만에 최고
지난 5월 금통위 이후 이주열 총재를 비롯한 금통위원들이 여러 차례 연내 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지목한 것은 바로 '금융 불균형' 문제였다.
금융 불균형은 저금리 환경 속에서 투자자들의 위험 추구 성향이 강해지고 레버리지(차입 투자) 시도가 늘어나면서 부동산 등 특정 부분으로 자금이 쏠리고 결국 자산 가격에 버블(거품)이 커지는 등의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한은의 가계신용 통계를 보면, 6월 말 기준 가계 신용(빚) 잔액(1천805조9천억원)은 역대 최대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경제 규모 확대, 부동산 가격 상승 등과 함께 가계신용도 분기마다 기록을 경신하며 계속 늘어나는 추세지만, 작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올해 상반기에만 77조9천억원이 늘었는데, 이 증가 폭 역시 반기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이다.
집값 급등세도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주택(아파트·단독·연립주택 포함) 매매가격은 전월보다 1.17% 올라 6월(1.04%)보다 오히려 상승 폭이 커졌다. 2008년 6월(1.80%) 이후 13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회의 직후 간담회에서 "누적된 금융불균형을 완화시킬 필요성 때문에 첫발을 뗀 것으로, 이번 조치 하나로 (불균형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며 "집값과 금융불균형에 저금리가 분명히 영향을 줬지만 다른 요인도 같이 작용한만큼 오래 누적된 금융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통화정책만이 아니라 다른 정책도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지난달에도 "여러 방법을 통해 집값을 평가한 결과,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우리가 문제 삼는 건 이런 가격 상승이 부채 증가와 밀접히 연결됐다는 점이다. 차입에 따른 자산 투자가 상당히 많은 점도 다른 나라와 대비된다"고 걱정을 내비쳤다.
◇ 올해 물가 상승률 2% 넘을 수도…기대인플레이션도 2.4%
중앙은행의 최우선 과제인 물가 관리도 기준금리 인상 결정의 주요 배경이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 4월 2.3% ▲ 5월 2.6% ▲ 6월 2.4% ▲ 7월 2.6%로, 4개월 연속 2%를 웃돌았다.
1개월 이상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자물가도 지난해 11월 이후 9개월 연속 오름세다.
7월 생산자물가는 폭염, 석유·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6월보다 0.7% 올랐다. 세부 품목 중에서는 수박(40.1%), 시금치(76.0%), 닭고기(18.4%), 경유(6.3%), 휘발유(8.2%), D램(8.7%), 호텔(10.1%), 국제항공여객(7.9%) 등의 가격이 크게 뛰었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2.0%)를 넘어설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래 인플레이션 압력도 큰 편이다. 8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기대인플레이션율(2.4%)은 2018년 12월(2.4%) 후 2년 8개월 내 가장 높았다. 커진 물가 상승 기대는 생산자의 가격 결정 등에 영향을 미쳐 결국 실제 물가 상승을 이끌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상승이 연초에는 식료품에 국한됐지만, 최근 들어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올라 유동성 축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美 테이퍼링 앞두고 선제적 '자금 유출' 대응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사실도 금통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테이퍼링이 시작된 뒤 조만간 연준의 본격적 기준금리 상승이 예상되는데, 금통위가 선제적으로 우리나라 기준금리를 먼저 올려 격차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만약 기준금리 등 정책금리가 미국보다 낮거나 같아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최근 크게 오른 원/달러 환율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20일 원/달러 환율은 1,180원에 육박해 작년 9월 이후 11개월 만에 최고 수준까지 뛰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시장이 너무 불안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재 주식과 채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우리나라 금리가 너무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코로나 재확산에도 온라인소비·재정효과 등에 '경기 타격 크지 않다'
아울러 이번 기준금리 인상에는 향후 경기에 대한 한은의 긍정적 시각도 반영됐다.
7월 초 이후 약 두 달 가까이 코로나19 4차 유행과 강화된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경제 회복세에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시중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0.9% 뒷걸음질한 한국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이미 지난 1분기 코로나19 발생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한은은 올해 4.0%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에도 7월 신용카드 승인액(14조517억원)은 6월보다 2.3%, 작년 같은 달보다 7% 늘어 내수 회복세가 이어졌다. 백신 접종 확대와 온라인 구매 증가 등이 소비 위축을 막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수출금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9%나 늘었고, 4차 대유행 속에서도 7월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54만 명 이상 증가했다.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에서도 제조업 업황 BSI(95)는 7월보다 2포인트 떨어졌지만,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81)은 오히려 2포인트 높아졌다. 일부 서비스업이 휴가철 특수 등을 누렸기 때문이다.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집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34조9천억원 규모의 2차 추경(추가경정예산)도 경기의 버팀목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상봉 교수는 "코로나 4차 유행으로 자영업자 대면서비스 소비 등이 줄어 하반기 성장률이 상반기보다 낮아질 수 있지만, 재난지원금 등 정부 재정 효과로 4.0%의 성장률은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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