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첫날 달라진 아프간인의 삶…"수염 기르고 청바지 태워"

입력 2021-09-01 10:24   수정 2021-09-01 16:44

탈레반 첫날 달라진 아프간인의 삶…"수염 기르고 청바지 태워"
일자리 잃고 부르카 찾는 여성·전통의상으로 갈아입는 남성
새벽부터 은행 ATM 앞 대기행렬…6시간 기다렸지만 현금 동나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오늘 아침에 모든 것이 끝났다. 거리에서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지시간 30일 밤 11시 59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탈레반은 축포를 터뜨리며 아프간 국민과 승리를 함께한다고 말했지만, 도시 전역은 공포와 절망으로 뒤덮였다.
31일 완전한 탈레반 치하에 놓인 아프간에서 평소와 다른 하루를 시작한 아프간 시민들의 이야기를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아리파 아마디(가명)는 이날 아침 청바지와 탈레반의 눈엣가시가 될만한 옷들을 전부 불태웠다.
그는 "오빠가 나가서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를 사다 줬다"며 "난 울면서 청바지를 태웠고 동시에 희망도 같이 불태웠다"고 말했다.
아마디는 지난 20년 동안 서방의 지원을 받는 정부 아래서 교육과 고용 등 일상에 자유를 누렸던 세대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파라에 있는 세관 사무소에 취직하는 데 성공했으나 3주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여성 상당수가 탈레반이 사무실을 떠나라는 요청에 쫓겨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긴 수염을 한 남성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마디는 "더는 그 무엇도 날 행복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카불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네사르 카리미(가명)는 탈레반 치하의 첫날 아침을 은행 입구에서 시작했다.
은행이 문을 열기도 전인 아침 6시 정도에 갔지만 이미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12시까지 기다렸지만, 은행에서 돈이 떨어졌다며 인출기를 닫아버렸다.
탈레반은 지난 28일 은행 영업 재개를 명령했지만 1인당 출금을 일주일에 200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그는 "수백 명이 있었고 탈레반은 막대기로 사람들을 때렸다"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결국 빈손으로 집에 왔다"고 말했다.
화려했던 수도의 풍경은 탈레반 치하의 금욕적인 분위기에 맞춰 뒷걸음치고 있다.
카리미는 "카불은 이전까지만 해도 아프간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도시였다"며 "화려한 헤어스타일부터 쟁글 팝, 터키 드라마까지 품었던 곳이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자르-이-샤리프에 사는 자바르 라마니(가명)는 탈레반 위협을 피하고자 수염을 기르고 아프간 전통의상을 입기로 했다.
그는 "탈레반 치하에서는 삶과 죽음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며 "수염과 의상이 다른 나라에서는 매우 간단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목숨을 위협하는 투쟁이다"고 말했다.
라마니는 무신론자다.
무신론자 공동체는 아프간 내에서도 매우 작아 이전 정부에서도 숨어 지내야 했다.
그는 "마자르와 카불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다"며 "이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를 탈레반에 넘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안 해도 하루에 다섯 번은 기도하러 가야 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그는 "한 세대의 꿈이 이렇게 된 것은 탈레반뿐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책임이 있다"며 "이렇게 떠날 거면 애초에 왜 왔냐"고 분노했다.
운동을 즐기는 레샤드 샤리피(가명)는 평소와 같이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등산에 나섰다.
그는 "탈레반이 날 보고 멈춰 세우더니 총을 겨눴다"면서 "돌아가서 무슬림처럼 차려입고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1기 통치(1996년~2001년) 때와는 달리 유화적인 면모를 보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앞서 지방 경찰청장을 처형하거나 부르카를 쓰지 않고 외출한 여성을 총살하는 등 과격한 행태가 전해지면서 탈레반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kit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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