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발급 도중 탈레반 점령…항공편도 끊겨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딸이 보고 싶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이후 생후 7개월 된 아기와 생이별하게 된 부부의 사연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31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인 A씨과 아프간인 아내 B씨는 지난 1월 아프간에서 딸 아이를 출산했다.
원래 영국에서 거주했던 부부는 탈레반의 위협이 도사리던 아프간에서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가족을 만나러 아프간에 잠시 갔던 아내가 영국 신분증을 현지에서 분실하면서 출산 전에는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이에 남편 A씨 역시 아내 곁에 머물기 위해 지난 12월 아프간에 입국했다.
아기가 태어난 후 부부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난 3월 아기의 영국 여권을 신청했다.
그런데 아기의 여권 발급이 지연되기 시작했고, 결국 부부는 5월 아기를 아프간에 있는 B씨의 친정집에 맡기고 영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B씨가 당시 영국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가 서류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아내를 위해 남편 A씨도 같이 영국으로 돌아가 비자 발급을 도와야 했다.
아기의 경우 영국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국 입국이 허락되지 않았다.
아기의 여권 발급이 지연되는 와중에 지난달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수중에 넣으며 아프간 전역을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기의 여권은 지난달 29일에서야 발급이 됐다. 하지만 이미 카불 국제 공항으로 향하는 모든 항공편이 끊기면서 부부가 아프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시점이었다.
아기를 돌보고 있는 외조부모는 영국·미국군을 도운 이력이 있어 탈레반의 보복이 닥칠까 봐 부부는 특히 우려하고 있다.
A씨는 "여권 발급에 시간이 덜 들었다면 딸은 지금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며 영국 정부가 아기의 여권을 빨리 발급해주지 않은 데 대해 억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영국 관료들은 딸이 아직 영국 국민이 아니고 여권이 도착하면 그때 딸이 영국 국민이 되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면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pual07@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