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시간 부족에 미국인 우선대피가 원인…미국 정착지원 제도적 장치도 미비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전 때 현지 조력 아프간인의 상당수를 대피시키지 못했다는 미 언론 보도가 잇따른다.
국외로 대피시킨 아프간인 중 미국이 현지 조력자에게 발급하는 특별이민비자(SIV) 해당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의 보복 위험에서 구출하기 위해 마련한 SIV 대상자 중 다수가 아프간에 발이 묶였다는 말이 될 수 있다.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행정부는 지금까지 12만 명 이상을 아프간에서 대피시켰고, 이 중 절반가량인 6만3천 명은 미국과 동맹국으로 실어나른 아프간 현지인이다.
그러나 WP는 이 중 SIV 심사를 통과한 아프간인이 7천 명에 불과하다고 국방부를 인용해 전했다.
현지 조력자와 그 가족을 포함해 SIV 대상 인원은 모두 8만8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국외 대피에 성공한 아프간인 중 미국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SIV 대상자가 있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SIV 대상자 전체 규모와 실제 대피 인원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는 뜻이 된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17∼31일 아프간에서 대피해 미국 본토에 도착한 인원이 3만1천 명이고, 이 중 2만4천 명이 '위험에 처한 아프간인'이라고 밝혔다.
'위험에 처한 아프간인'은 SIV는 물론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비자 대상자, 그 외 사유로 아프간을 탈출한 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CNN방송에 따르면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 협력한 아프간인 다수가 혼란스러운 대피 때 아프간에 남은 것 같다고 시인했다.
이 당국자는 대피 업무를 담당한 현장의 관리들이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했고 도움을 주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걱정이 가득했다며 많은 도전에 직면했었다고 전했다.
또 초기 단계 때 SIV 신청자 등에 우선순위를 두려 했지만 여러 사정상 이들에 초점을 맞출 인력과 시간이 부족했고, 나중에는 미국인 대피를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인 대피 수준과 큰 대조를 보인다.
미국은 아프간 잔류 선택이 아닌 대피를 희망하는 시민권자 중 6천 명을 국외로 이동시켰다고 밝혔다. 이는 희망자의 98%라는 게 백악관의 설명이다.
상당수 아프간인이 현지에 발이 묶인 반면 미국이 자국민의 경우 대부분 대피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말이 된다.
대피에 실패한 현지인이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 미국에 대한 배신감까지 토로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와중에 미국이 자국민을 우선하며 아프간인 대피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WP는 미래의 동맹이 되길 원하는 나라에 미국은 최종적으로 그들을 보호하지 못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WP는 미국으로 오는 아프간인 다수가 SIV 등 정식 비자 없이 '인도적 가입국자' 신분이어서 전통적 의미의 난민에 적용되는 혜택을 주지 못하는 제도적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입국자의 경우 1천250달러 일시불 등 90일간 제한된 조력을 받지만 난민 프로그램을 통해 들어오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의료, 상담, 정착 서비스는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 의회가 아프간 철수 완료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아프간을 탈출한 미국민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킨 것과도 비교가 된다.
난민단체들은 의회가 대피 아프간인을 지원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의 긴급 자금 지원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고 WP는 전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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