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대법원 '낙태처벌 위헌' 결정…멕시코 전역 합법화까진 먼길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전 세계에서 가톨릭 신자가 두 번째로 많은 멕시코에서 낙태 처벌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지면서 멕시코 안팎의 인권단체 등이 환호하고 있다.
아직 멕시코 전역의 낙태 합법화로 이어지기까지는 많은 절차가 남았지만, 합법화에 길을 연 이번 판결이 중남미 다른 국가들의 낙태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8일(현지시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낙태 여성을 처벌해선 안 된다고 한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은 "어느 한쪽 편을 들어선 안 된다"며 낙태와 관련한 개인적 의견은 표명하지 않았다.
멕시코 대법원은 전날 낙태를 범죄로 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북부 코아우일라주 낙태 처벌법과 관련한 위헌 소송에서 나온 판결이었다.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로, 브라질에 이은 세계 2위 가톨릭 대국인 멕시코에서의 이번 판결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은 역사적 판결로 여겨지고 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인권을 위한 중요한 발전"이라고 즉각 환영하는 등 전 세계 인권·여성단체 등도 반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에서 지난해 말 임신 초기 낙태를 허용한 데 이어 멕시코에서도 전향적인 결정이 내려지면서 보수 가톨릭 색채가 강한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선례를 따를지 관심이 쏠린다.
아르헨티나 외에 중남미에선 쿠바, 우루과이, 가이아나 정도만이 임신 초기 낙태를 허용해 왔다. 중미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은 성폭행 임신이거나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도 예외 없이 낙태를 금지한다.
다만 이번 대법원 판결이 멕시코 전역의 낙태 합법화로 이어지기까진 갈길이 멀다.
멕시코에선 현재 전체 32개 주 가운데 수도 멕시코시티와 오악사카, 이달고, 베라크루스 등 4개 지역에서만 임신 초기 낙태가 합법이다.
나머진 28개 주에선 일부 엄격한 예외 상황을 제외하곤 낙태가 불법이라,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은 형사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올해 1∼7월에만 멕시코 전역에서는 불법 낙태와 관련된 조사가 432건 개시됐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코아우일라주에는 즉시 적용되며, 다른 지역의 경우 낙태 처벌을 어렵게 하는 강력한 선례로 작용하게 된다.
낙태를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 것을 넘어 낙태 자체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선 주(州)별로 낙태 합법화 법안이 처리돼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낙태 합법화 요구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저항도 만만치 않다.
보수 야당은 이미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선 낙태를 계속 처벌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멕시코의 낙태 합법화 지지 운동가인 아렐리 토레스 미란다는 뉴욕타임스(NYT)에 "이제 할 일은 입법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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