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추방 피해 강 남북 오가…멕시코 망명 신청도 늘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1만 명 넘는 아이티인이 모여있던 미국 텍사스주 델리오의 난민촌은 며칠 만에 빠르게 규모가 줄었다.
반면 리오그란데강 건너 멕시코 코아우일라주의 시우다드아쿠냐엔 강 너머 미국 땅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 아이티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국토안보부는 전날까지 델리오에 있던 아이티인 중 1천401명을 아이티로 돌려보내고, 3천206명을 이민자 수용시설로 보냈다.
임신부와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일부는 이민법원 출석 일자를 잡은 후 풀려났다.
한때 1만4천 명에 달했던 델리오 다리 부근 아이티인들은 며칠 새 5천 명 미만으로 줄었다고 국토안보부는 밝혔다.
일부 아이티인들은 추방을 피해 도로 강을 건너 멕시코로 내려갔다.
멕시코로 '일보 후퇴'하는 것이 아이티로 추방돼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서다.
아이티에서 남미로, 남미에서 정글을 통과해 중미를 거슬러 오르는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시우다드아쿠냐로 속속 새로 들어오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미국행을 강행할지 아니면 멕시코에 망명을 신청하고 정착할지 고민하고 있다.
리오그란데를 건너 미국에 갈 경우 운이 좋으면 망명 절차를 시작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아이티로 추방된다.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다.
2살 딸과 함께 멕시코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던 한 부부는 전날 텍사스에서 자유의 몸이 됐다는 사촌의 문자를 받은 후 고민 끝에 미국을 향해 강을 건넜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멕시코에 머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델리오에 아이티인들이 갑자기 불어난 뒤 멕시코 당국도 시우다드아쿠냐에 있는 아이티인들을 버스와 비행기에 태워 남부 국경 지역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AP통신에 따르면 23일 새벽엔 멕시코 군경이 시우다드아쿠냐의 난민촌을 에워쌌다.
일부는 군경을 피해 다시 강 건너 북쪽으로 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리오그란데강을 이리저리 오가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어디든 아이티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미국행을 단념하고 멕시코에 망명을 신청하는 이들도 늘고 있지만 언제쯤 체류 자격을 얻게 될지는 기약이 없다.
이민자들이 과테말라를 건너 멕시코로 들어오는 관문 도시인 남쪽 치아파스주 타파출라엔 망명 신청이 급증해 인터뷰가 내년까지 밀려있다.
체류 자격 없이는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 아이티인들은 망명 허가가 날 때까지 타파출라의 천막이나 낡은 숙소에서 버텨야 한다.
멕시코에 머무는 쪽을 택한 쥘리아나는 "사람들과 모여서 북쪽으로 이동할 생각이었으나 추방당할까 너무 무서워졌다"며 "멕시코에서 일할 수 있게만 해주면 좋겠다. 뭐든 합법적으로 하고 싶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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