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백인 실종' 대서특필에 유색 인종에는 불균형 보도 지적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20대 백인 여성의 실종 사건을 둘러싼 미국 언론의 보도를 놓고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 주요 언론이 이달 들어 백인 여성 개비 퍼티토(22) 실종 사망 사건에 관한 대서특필을 이어가자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자사를 포함해 미국 언론이 퍼티토 사건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백인과 유색 인종 실종 사건에서 나타나는 보도 불균형 문제를 진단했다.
퍼티토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것과 별개로 젊은 백인 여성이 아닌 유색 인종 여성의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면 큰 관심을 두고 보도를 했겠느냐는 지적이었다.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은 미국 공영방송 PBS의 흑인 여성 앵커였던 그웬 아이필이 2004년 저널리즘 콘퍼런스 행사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 사건에서 나타나는 불균형 보도 현상을 지적하며 만들어낸 용어다.
퍼티토는 약혼자와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고 지난 19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타살로 규정하고 종적을 감춘 약혼자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이 사건은 초기부터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보도 경쟁이 이어졌다.
ABC 등 지상파 방송은 황금시간대에 이 사건 뉴스를 배치했고, 지난 7일 동안 CNN 방송은 346차례, 폭스뉴스는 398차례 사건 경과를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퍼티토를 "파란 눈과 금발의 모험가"로 묘사하며 실종 사건을 다뤘고, 뉴욕포스트는 1주일 사이 세 차례나 1면에 이 사건을 실었다.
퍼티토가 살해됐다고 경찰이 결론을 내린 뒤에는 WP, NYT, ABC, CBS, NBC, CNN, 폭스 등 거의 전 언론이 긴급 속보를 내보내고 헤드라인으로 이 소식을 다뤘다.
하지만, 미국 신문과 방송의 이러한 보도가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은 언론계 내부에서 먼저 제기됐다.
최근 7일 동안 퍼티토 사건을 100차례 보도했던 MSNBC 방송의 흑인 여성 진행자 조이 리드는 지난 20일 인디언 원주민과 흑인 실종 사건을 다루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대담을 진행했다.
리드는 이 자리에서 "왜 유색 인종이 실종됐을 때는 이번 사건만큼이나 언론의 관심이 없었는가"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NYT도 리드의 문제의식을 전하면서 실제로 유색 인종 실종 사건은 백인보다 더 높은 비율로 발생하지만,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퍼티토 시신이 발견된 와이오밍주에선 2011∼2020년 인디언 원주민 710명이 실종됐고 이 중 57%가 여성이었으나 퍼티토 사건만큼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례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미국 언론이 유색 인종 여성에 대해선 종종 위험을 자초하거나 실종 사건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특징짓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대니엘 슬라코프 조교수는 미국 언론이 "흑인과 라틴계에 대해선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이들이 사건의 희생자가 된 것조차도 일반화해버린다"고 말했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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