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CNN 진단…"정파적 차이가 완전히 다른 2개의 미국 만들어내"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공화당의 상징색인 빨강을 뜻하는 '레드 코로나19'가 되고 있다는 진단이 미 언론에서 나왔다.
백신을 거부하는 공화당 지지 성향의 주(州)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는 현실을 짚은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레드 코로나19(Covid)'란 기사에서 "코로나19 관련 당파적 양상이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신 접종 초기만 해도 흑인과 라티노, 공화당 지지층 등 특정 인구 집단에서 접종 지체 현상이 빚어졌는데 최근 인종 간 격차는 좁혀진 반면 정파적 격차는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지난달 설문 결과를 보면 민주당 유권자의 86%는 최소한 1회 백신을 맞았지만 공화당 유권자에게선 이 비율이 60%에 그쳤다.
NYT는 "백신 접종을 둘러싼 정치적 분열이 너무 커서 거의 모든 확고한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지지 성향 주)는 이제 거의 모든 확고한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지지 성향 주)보다 백신 접종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여전히 국가 차원의 위기이긴 하지만 그 최악의 형태는 점점 더 공화당 성향의 미국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미국의 코로나19 초기부터 1년이 넘도록 외려 민주당 성향의 지역에서 더 상황이 나빴다고 강조했다.
이들 지역은 마스크 착용에 더 적극적이었지만 통상 정치적 진보 성향을 띠는 주요 대도시로 몰리는 해외 여행의 규모 같은 차이를 극복할 만큼 마스크가 효과적이진 않아서 코로나19가 더 심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이 상황을 바꿨다. 백신이 민주당-공화당 지역 간 다른 차이를 압도할 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뉴욕의 교외 지역과 샌프란시스코, 워싱턴DC, 미 북동부 지역은 접종률이 높아 미(未)접종자까지도 확진자가 적은 환경 덕에 보호를 받았다.
반면 보수적인 동네는 전염성이 강한 '델타 변이'에 직격탄을 맞았다.
보건 데이터 분석가 찰스 게이바에 따르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70% 이상 득표한 카운티에서는 4차 재확산이 시작한 6월 말 이후 인구 1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가 47명이었다.
반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32%에 못 미친 카운티에서는 이 수치가 10명에 그쳤다.
신문은 이런 백신 접종률 격차가 일정 부분 공화당 지지자들의 자유의지론적 본능에서 기인한다고 짚었다. 이들에게 자유란 스스로 결정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일이고, 이들은 뭔가를 하라고 지시받는 것에 분노한다.
그러나 이런 철학의 차이는 현상의 일부를 설명할 뿐이다. 다른 많은 나라에선 백신에 대한 태도가 좌우 이념에 따라 나뉘지 않는다. 미국의 일부 공화당 주지사를 포함해 보수이면서도 코로나19에 효율적으로 대처한 지도자들이 있다.
NYT는 최근 수십 년간 과학과 실증적 증거에 적대적으로 변해온 공화당을 더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폭스뉴스를 비롯한 보수 미디어 집단이 이런 적의를 반복하고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런 음모론적 사고를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시키긴 했지만 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고 신문은 진단했다.
극우 성향 매체 브라이트바트의 기고가인 존 놀티는 최근 기사에서 "바로 지금 무수히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생명을 살리는 백신을 맞기를 거부함으로써 좌파를 물리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CNN도 28일 '미국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레드 코로나19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CNN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을 두고 비난받아야 할 단 한 사람이 있지는 않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폭스뉴스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스크를 둘러싼 논의를 자유를 제한하려는 민주당 지도자들의 시도로 만들었고, 봉쇄령을 자유의 폐기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방송은 "우리는 정치적 노선을 따라서만 분열돼 있지 않다"며 "우리의 정치적 분열은 완전히 다른 2개의 미국을 만들어냈다"고 진단했다.
주민 대부분이 백신을 맞고 입원 환자와 사망자가 낮은 미국과, 코로나19가 여전히 인구를 유린하는 미국으로 쪼개졌다고 CNN은 짚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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