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동맹' 균열…탈동맹외교·자체방위 나서는 EU

입력 2021-10-06 08:00  

'대서양동맹' 균열…탈동맹외교·자체방위 나서는 EU
미국 의존 줄이고 중국과 협력 강화 움직임...유럽방위군 창설도 탄력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유럽연합(EU)이 탈동맹 외교와 자체 방위를 모색하고 있다.
서방의 안보 축인 이른바 '대서양 동맹'(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흔들리자 '유럽 자립론'이 더욱 힘을 받는 모습이다.
EU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철군 결정으로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회의감이 커진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영국·호주의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 출범으로 미국에 대한 EU 회원국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호주는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는 안보 동맹에 따라 미국, 영국의 지원으로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기로 했는데, 이는 앞서 프랑스 업체와 맺은 560억 달러(약 66조원) 규모의 디젤 잠수함 계약 파기를 의미했다.
프랑스 정부는 동맹에 배신을 당했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항의 표시로 미국 주재 대사를 한때 불러들이기도 했다.
오커스는 인도·태평양에서 전략적 이해가 충돌하는 중국의 거센 반발도 불러왔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말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와 화상통화에서 오커스 출범과 핵잠수함 협력이 냉전 회귀, 군비경쟁 심화와 핵확산 측면에서 역내 평화·안정과 국제질서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전과 다른 국제정세에 직면한 EU는 안보문제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나아가 최대의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 경제적인 관계뿐 아니라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협력을 강화하는 등 탈동맹 외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대만 문제 등 외교적 갈등에 대응하는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유럽을 중시하는 움직임을 보임이면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그간 익숙했던 세계 질서와는 방향이 다르다.
EU는 그동안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부상에 경계와 우려의 시선을 보내며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정책을 펴왔다.
중국 제품이 유럽 시장에 밀려 들어옴에 따라 EU는 중국과 여러 차례 무역 분쟁을 빚기도 했다.
EU는 또 중국의 거대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대응한 무역 및 사회기반 연결 계획인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무슬림에 대한 인권탄압을 이유로 EU와 중국 간 포괄적 투자협정(CAI)이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로 미국과 유럽 간 동맹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EU-중국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국제무대에서 EU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해 주목된다.
미셸 의장은 이달 21∼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회원국 정상에게 보낸 서한에서 EU의 이익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자율적인 행동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중국과 관계 증진을 언급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다음 주 미셸 상임의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으로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은 올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두 차례 화상 회담에서 중국은 EU와 협력 관계 확대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분석가들은 미국과 유럽의 분열이 중국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딩이판(丁一凡) 전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연구원은 홍콩의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오커스는 유럽 동맹과 협력을 약속한 미국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낮출 것이며 이는 유럽과 긴밀한 관계 진전을 원하는 중국에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안보를 위임하는 유럽은 1990년대 후반부터 자체 방위기구 창설 방안을 논의해 왔다.
그동안 비용 문제 등으로 진척을 보지 못했으나 아프간 철군 사태로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 정책에 더는 휘둘릴 수 없다는 인식으로 최근 유럽군 창설이 부쩍 추진 동력을 얻고 있다.
EU가 경제통합에 이어 정치통합을 완성하려면 정치적 통일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미국이 유럽 국가에 나토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면서 EU 내에서 자체 방위군 창설 요구가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EU 27개 회원국 정상은 안보와 방위 분야에서 EU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능력과 책임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EU 대외관계청(EEAS)이 마련 중인 EU 안보방위전략을 내년 초 채택을 목표로 진전시킬 것을 다짐했다.
미셸 의장은 당시 EU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방위 투자를 늘리고, 비군사적, 군사적 능력과 작전 준비 태세를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U 주도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군 창설에 적극적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가 진정한 유럽의 군대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유럽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언젠가 실질적이고 진정한 유럽군을 창설하기 위해 비전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했다.
songb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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