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테이퍼링·헝다…주요국 증시 '흔들'
"돈 푸는 속도 떨어지면 둔화…경기 회복 여부에 달려"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채새롬 박원희 이미령 기자 =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박과 조기 긴축 움직임, 중국발 위험 등 악재가 쌓이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거리고 있다.
지난달까지 거침없이 상승 곡선을 그리던 주요국 증시가 이달 들어 조정에 들어가면서 국내 증시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예고와 금리 인상 가시화로 전 세계 금융시장의 유동성 장세의 끝이 보이면서 본격적인 약세장이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악재 또 악재…'스태그플레이션·테이퍼링·헝다 사태'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한 배경에는 불황 속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가장 먼저 꼽힌다.
특히 지난 11일(현지시간)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7년 만에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는 등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차량용 반도체 부족 등 공급망 병목 현상까지 불거지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같은 달보다 5.4% 올라 2008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같은 달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0.7% 뛰어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6년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이는 기업들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공급망 차질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기업의 비용 증가와 경기 둔화로 이어질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이런 인플레이션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 통화당국이 조기 긴축 움직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최근 물가 상승이 일정 기간 연준의 평균 물가 목표치인 2%를 넘어서면서 금리 인상 시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연준은 이미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통해 연내 테이퍼링 실시를 예고한 상태다.
여기에 미국 부채한도 협상, 미중 갈등 재개 조짐, 중국의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 유동성 위기와 전력난 등 대외 위험 요인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불안 심리를 부추기고 했다.
◇ 금융시장 '휘청'…자금 유출 속 '불안한 장세'
이처럼 동시다발로 터진 악재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초만 해도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던 뉴욕증시는 이달 들어 뒷걸음질 쳤다.
지난 4일 기준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지난 8∼9월 고점 대비 4% 넘게 하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5%, 7% 내렸다.
다만 3대 지수는 이후 연방정부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 해소와 기업 실적 호조 소식에 낙폭을 일부 만회했다.
아시아에서 홍콩 항셍지수와 일본 닛케이 지수도 지난달 고점 대비 각각 11% 안팎 내렸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4%가량 하락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외국인 자금 유출로 주식과 원화, 채권이 동반 약세를 보이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두드러졌다.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는 지난 7월 6일 3,305.21에서 석달 만인 지난 6일 2,908.31로 떨어져 12%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화 강세 여파로 1년 2개월여 만에 지난 12일 장중 1,200원을 넘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도 지난 13일 연 1.824%까지 올라 2019년 3월 6일(연 1.828%) 이후 최고치로 뛰었다.
주 후반 반발 매수 등으로 주가와 원화, 채권값 약세가 다소 진정됐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 유동성 파티 끝나나…본격 약세장 진입 여부에 촉각
전 세계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은 상승장을 이끈 '유동성 파티'가 서서히 막을 내릴지에 쏠려 있다. 곧 유동성이 키운 거품이 터져 본격적인 약세장에 진입할지에 투자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증시는 '유동성 장세→실적 장세→역금융 장세→역실적 장세' 순으로 순환한다. 유동성·실적 장세는 상승기, 역금융·역실적 장세는 하락기다.
일본 애널리스트 우라가미 구니오(浦上邦雄)가 1990년 발간한 투자서 '주식시장 흐름 읽는 법'에서 소개해 널리 알려진 '증시의 사계절' 개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 유동성 장세가 펼쳐져 증시를 포함한 모든 자산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회복하면서 금리 인상과 긴축이 가시화하면서, 짧은 실적 장세를 거쳐 역금융 장세에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시장 상승 속도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테이퍼링을 단행하고 금리를 인상하면 돈 푸는 속도가 떨어져 증시 상승 속도와 여력은 많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도 "공급망 병목 현상이 물가 상승 압력과 경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어 증시는 불안해지고 조정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경기와 실적 모멘텀이 이어질 경우 약세장 진입이 급격하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한국의) 성장률이 잠재 수준을 상회하는 견실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 요인이 경기 회복세를 제약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수요 회복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며 "일반적인 스태그플레이션과 다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경민 연구원은 "경기 회복 여부가 중요하다"며 "병목 현상 완화 구간에 들어가면 경기 회복 기대가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ice@yna.co.kr, encounter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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