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유럽·중남미·아프리카 등 신속 대응…미·서유럽 '신중'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려는 지구촌 곳곳에 인플레이션 경고등이 켜졌다.
경제 정상화 과정에서 빠르게 회복되는 수요를 공급·물류망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물가가 급등하고 있어서다.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인건비까지 치솟으면서 물가를 더 끌어올리는 양상이다.
상당수 국가가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발 빠르게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대체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시각에 무게를 두고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이 38개국 중앙은행을 추적·분석한 결과 이 중 13개 중앙은행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소 1차례 이상 금리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들어 뉴질랜드, 폴란드, 루마니아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후 최초로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싱가포르도 14일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가계가 인플레이션 전망을 고려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들도 같은 생각에서 상품·서비스 가격을 올림으로써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고착화할 가능성을 각국 중앙은행이 우려한다고 WSJ은 전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인플레이션을 경험해 본 중남미 국가들이 금리 인상에 적극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이들 국가의 가계와 기업이 과거 경험에서 배운 교훈대로 선제적 행동에 나설 경우 물가 상승세가 더 가팔라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칠레, 콜롬비아, 페루가 최근 여러 차례 금리를 올려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였다.
노동력 부족으로 인플레이션에 취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중부 유럽 국가들도 서둘러 금리 인상에 나섰다.
이들 국가에서는 젊은이들이 서유럽으로 많이 이주하고 출산율마저 낮아 인건비 상승이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에 에티오피아는 지난 8월 금리를 올리고 민간 은행들의 지급준비율을 두 배로 올리는 등 통화 긴축에 나섰다.
그러나 오랫동안 저물가에 시달렸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 유럽연합 회원국)의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이션 장기화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보고 있다.
연준은 연말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 시작을 예고했으나, 금리 인상까지는 갈 길이 멀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다만 미국에서도 최근 주택 임차료가 급등하고 있어 인플레이션에 불을 붙일 가능성을 연준이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아시아 다수 국가에서도 아직 경제 회복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화 긴축으로의 전환은 시기상조라는 시각을 보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경제 성장을 위해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중앙은행 고위 간부들을 해고하기도 했다.
또 통화 정책이 아닌 정치적 수단으로 물가를 억제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례들도 있다.
중국은 9월 생산자물가가 역대 최고인 10.7% 급등했으나, 기업들이 이익을 희생한 덕분(?)에 소비자물가는 0.7% 오르는 데 그쳤다. 이강 인민은행장은 지난 13일 주요 20개국(G20) 포럼에서 중국의 인플레이션은 "가벼운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아르헨티나는 내달 중간선거를 앞두고 식품 등 1천247개 품목의 가격을 90일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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