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된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1일 한국 독자 우주기술의 새 역사를 썼다. 누리호는 이날 오후 5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내 제2발사대를 엄청난 속도로 박차고 날아올랐다. 탑재된 1.5t급 모사체 위성(더미 위성)의 최종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지만 700km 고도까지 끌어올림으로써 독자적 수송 능력을 갖춘 세계 7대 우주 강국의 반열을 눈앞에 두게 됐다. 누리호는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모든 과정이 국내기술로 진행됐다. 현재 1t 이상 실용급 위성 발사가 가능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일본 및 인도뿐이며 범위를 확대해도 스스로 발사체를 만들어 우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나라는 9개 정도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비록 '미완의 성공'이지만 누리호 발사는 그 자체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우주 역량을 과시한 큰 걸음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누리호 발사에 헌신한 기술진과 관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누리호 발사와 관련해 "아쉽게도 목표에 완벽히 이르지 못했다"면서도 "발사체를 우주 700㎞ 고도까지 올려보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며 우주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나로우주센터를 찾아 참관한 뒤 대국민 메시지에서 "다만 더미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것이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며 "오늘 부족했던 부분을 점검해 보완하면 내년 5월에 있을 두번째 발사에서는 반드시 완벽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처럼 이번 누리호 발사는 아쉽지만 미완의 과제를 남긴 사실상의 성공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발사체 기술은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제한된 대표적 산업 분야이다. 지난 2013년 발사에 성공한 우리나라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는 러시아가 1단 액체엔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누리호 발사는 모든 과정이 순수 국내 기술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우리 기업이 세계에서 7번째로 중대형 액체로켓 엔진을 만들어 냈다. 누리호 1단에 추력(推力)이 75t급인 액체엔진 4기를 하나로 묶는 '클러스터링'은 제작 과정 중 가장 난도가 높은 기술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누리호가 발사될 때까지 지지해주는 제2발사대도 우리 기술로 개발됐는데 이 또한 큰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다. 나로호의 제1발사대에는 별도의 타워가 없었으나 제2발사대는 3단형인 누리호 발사체에 맞춰 12층 높이의 48m 엄빌리칼(umbilical) 타워를 설치했다. 엄빌리칼 타워는 산모가 태아에게 산소 등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처럼 발사체에 추진제와 가스류 등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지상 구조물이다. 한국이 우주 개발에 나선 지 30년 만에 명실공히 자력으로 우주 수송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누리호 발사가 '미완의 성공'을 거둠에 따라 우리나라도 민간이 우주 산업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의 전환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우주 개발 산업을 주도하고 기업이 따라가는 기존의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로 변화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한다. 지난 12년간 투입된 예산이 1조9천572억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인 누리호 발사에는 국내 기업 300여 곳에서 500여명이 참여하며 기술력을 쌓았다. 이번 누리호 개발·발사를 계기로 우리 기업들도 우주 개발 역량을 확충하며 뉴 스페이스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버진갤럭틱 등이 우주 관광 사업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외신 보도를 통해 접할 때마다 그저 '멀고 먼 남의 나라'일로만 여겨지던 터다. 누리호는 내년 5월 2차 발사에서 0.2t 성능 검증 위성과 1.3t 모사체 위성을 탑재할 예정이다. 임혜숙 장관은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14년간 8개의 위성을 발사하는 등 독자적인 위성 항법 체계를 구축하는 계획과 함께 민간기업 참여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우주개발 예산 규모는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정부가 마중물을 놓고 민간 기업이 열정과 기술, 창의력으로 화답해 우리나라도 독자적이고 본격적인 우주 개발의 길로 들어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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