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간판스타 티롭의 죽음…'케냐 여자 선수들의 애환'

입력 2021-10-23 01:06  

육상 간판스타 티롭의 죽음…'케냐 여자 선수들의 애환'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남편 등 탐욕에 착취당해
여성·선수·가장 등 슈퍼우먼 역할에 힘겨워



(나이로비=연합뉴스) 우만권 통신원 = 케냐의 여자 장거리 육상선수 아그네스 티롭이 최근 자택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재 남편이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는 가운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대가로 종종 비극적인 대가를 치르는 케냐 여성 선수들의 애환이 조명받고 있다.
이들 여성 선수의 육상 스타덤 진출 증가는 현지 성 규범의 점진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암울하며, 특히 젊은 여성들은 코치나 에이전트,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리는 재정적 착취에 취약하다고 AFP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뉴욕에서 마라톤 4연패의 신화를 쓴 케냐 여성 마라토너 메리 케이타니는 언론 인터뷰에서 "여성 운동선수들이 온 가족의 짐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여성은 힘든 직업 생활과 결혼, 그리고 모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대가족의 생계 수단을 떠맡으며 오늘도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타니는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에 전념한 까닭에 재정 관리에 필요한 교육이 부족해 탐욕스러운 배우자에게 '캐시카우'로 이용될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들은 우승으로 벌어들인 돈이 자신의 소유로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울증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중부 리프트 밸리의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난 티롭과 마찬가지로 많은 케냐 운동선수는 스포츠에서의 성공을 가난에서 벗어나는 티켓으로 여기면서 규제되지 않고 성적 비행이 난무하는 훈련 캠프에서 달리기를 배운다.
세계 마라톤 기록 보유자였던 테글라 로루페는 "이 소녀들을 먹이로 삼기 위해 기다리는 늑대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이전트들이 가족에게 돈을 지불하며 "소녀들이 조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해외 경기에 참여하도록 강요"하도록 설득했다고 덧붙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800m 금메달리스트인 윌프레드 붕가이는 빨리 성공하는 사람들은 급작스레 찾아온 현실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젊은 운동선수들은 갑자기 얻게 되는 명예와 돈을 감당할 수 없다"며 남성들은 미래를 계획하는 대신 고급승용차나 술에 탐닉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여성 선수는 약탈적인 남성과 나쁜 관계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어린 소녀들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도미닉 온디에키 케냐 육상경기연맹(AK) 대변인은 "티롭의 죽음은 경종을 울렸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은 이제 결혼 생활에서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마음을 열고 있다. 대부분 선수는 침묵 속에서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라며 "그들은 가족의 재정을 완전히 통제하는 남편에게 의사 결정 권한을 빼앗겨왔다"고 밝혔다.
케이타니는 가족들이 여성 운동선수들에게 슈퍼우먼이 되라는 압력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 운동선수는 아이를 낳고, 빨리 체중을 감량하고, 몸매를 되찾고, 온 가족을 위해 식탁에 음식을 올리기 위해 경기에 복귀해야 하는 현실에 짓눌린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하지만 남자들은 이들이 흘린 땀의 열매를 기다리며 즐길 뿐이다. 책망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airtech-keny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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