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합의사항 이행 촉구에 그쳐…미얀마에 "가족·균형" 언급, 끌어안기?
미국 등 해외 정상들 불참 우려해 '흘라잉 일단 배제 꼼수' 시각도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미얀마 쿠데타 군사정권 수장의 참여까지 배제하는 '강수'를 뒀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가 정작 회의에서는 쿠데타 사태에 대 별다른 결과를 내지 못해 '맹탕'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27일 공개된 의장성명에 따르면 아세안 정상들은 미얀마 문제와 관련, 잇단 폭력과 사망자 발생 등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정치범들에 대한 석방을 요구했다.
또 지난 4월 아세안특별정상회의에서 미얀마 군부의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도출한 5개 합의사항 이행도 거듭 촉구했다.
성명은 또 "내정 불간섭 원칙을 존중하되, 미얀마 사태에 아세안 원칙을 적용하면서 적절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하고, 미얀마가 여전히 아세안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있다고도 했다.
원론적 언급이거나 기존에 나왔던 내용의 재탕에 불과하다.
아세안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쿠데타 정권 수장을 배제하는 이례적 조처까지 했음을 감안할 때, 정작 정상회의는 '용두사미'로 끝났다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미얀마를 끌어안으려는 제스처를 보인 게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한 아세안 외교관계자는 이번 성명에 대해 연합뉴스에 "미얀마가 아세안의 가족이라고 언급한 부분과, 균형을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아세안이 미얀마 군정을 상대로 더 이상의 관계 악화는 바라지 않는다는 메시지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정상회의에서는 미얀마 군정에 우호적이라는 평을 받는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도 "아세안이 미얀마를 쫓아낸 것이 아니라, 미얀마가 그들의 권리를 버린 것"이라며 "이제 상황은 '아세안-1'"이라고 비판했다.
역시 군정과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는 태국의 쁘라윳 짠오차 총리도 비판적 시각을 내비쳤다.
그러나 아세안 정상들은 4월 특별정상회의 합의 준수 촉구를 넘어서는 더 적극적 '조치'까지는 나가지 못해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아세안 정상들의 이런 행보에 미얀마 민주진영은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미얀마 반군부 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의 보 흘라 틴 아세안 주재 대사는 이날 '인권을 위한 아세안 의원들'(APHR)이 개최한 화상 회의에 참석, "아세안이 결단성있는 기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틴 대사는 또 "아세안은 혼자서는 일할 수 없다. 효율적인 인도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엔과 NUG 그리고 다른 대화 파트너들과 함께 일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NUG는 지난 25일 틴 대사를 새로 임명했다.
군정에 가장 비판적인 국가로 꼽히는 인도네시아의 일간 자카르타 포스트도 사설에서 미얀마가 아세안과 합의 사항을 준수하지 못하는 한 아세안의 모든 활동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점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다른 정상들에 말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상회의 성명은 이런 목소리와는 거리가 있다.
이 때문에 아세안의 군정 배제 결정은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쿠데타 사태에 대한 소극적 대응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자 이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느냐는 비판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세안과 회의를 할 예정인 미국 등 다른 국가 정상들이 흘라잉 참석시 불참할 가능성이 있어 그를 배제했다는 분석도 외교가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 전문가인 데이빗 헛은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흘라잉 사령관 대신 '비정치적 인사'를 초청하면서 오히려 아세안이 미얀마 사태를 제대로 다루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쿠데타 수장이 정상회의에 참석하면 어떤 식으로라도 쿠데타 사태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었지만 흘라잉이 불참하면서 오히려 아세안이 이런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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