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사관 점거 42주년 기념…"유조선 나포 시도" 미국 비난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남의 것을 빼앗는 미국에 우리는 계속 저항할 것입니다. 이란에는 성스러운 전사가 가득합니다"
4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 위치한 옛 미국 대사관 터 앞 도로에서 만난 하자비(61)씨가 연합뉴스에 목소리 높여 말했다.
하자비씨는 전날 중동 오만해에서 이란의 유조선을 미국 해군이 나포하려고 했으며 "우리는 강도질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전날 현지 매체들은 혁명수비대가 미군의 유조선 나포 시도를 무력화시켰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반미 감정이 고조된 가운데 테헤란 등 이란 주요 도시에서는 미국 대사관 점거 42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 비나아니(65)씨는 "미국은 이란뿐만 아니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예멘을 배신하고 기만했다"며 "세계는 이런 미국의 행동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2년 전 이곳에서 이맘 호메이니는 미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는데, 우리도 지금 곳곳에서 학살을 자행하는 미국에 저항할 것을 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테헤란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은 1979년 2월 이란 이슬람혁명이 성공하고 9개월 뒤인 그해 11월 4일 발생했다.
미국이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조를 비호하고 이란 내정을 계속 간섭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 대학생들이 미 대사관 담을 넘어 순식간에 공관을 점거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외교관과 직원 등 미국인 52명은 444일 동안 인질로 억류됐다.
미 대사관을 점거한 대학생들은 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 체류하던 모하마드-레자 팔레비 왕의 신병을 인도하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 사건으로 1980년 미국은 이란과 단교하고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미국 외교관들의 탈출 이야기는 훗날 '아르고'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이날 집회에도 많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미국", "미국을 타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경찰과 혁명수비대 병력은 집회가 열린 옛 미 대사관 터 반경 500m 내 차량 통행을 통제했다.
당국은 집회 참가자 수를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 대사관 앞 왕복 4차로 도로 약 250m 구간은 군중으로 가득 찼다.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이날 집회에 참석해 "중동을 침략한 미국은 독재자를 만드는 공장"이라며 "이 나라의 아이들은 어떤 권력에도 용감하게 대항한다"고 밝혔다.
테헤란 도심의 대규모 반미 집회는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회담 재개를 앞둔 상황에서 열렸다.
이란은 지난 4월 초부터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과 핵 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협상은 지난 6월 20일 이후 잠정 중단된 상태다.
앞서 이란의 핵협상팀을 이끄는 알리 바게리 카니 외무부 차관은 오는 29일 핵합의 복원 회담이 재개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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