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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4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 위치한 옛 미국 대사관 터 앞 도로는 검은 차도르를 입은 여성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들은 "미국을 타도하라", "미국에 죽음을" 등의 구호를 목이 터지라고 외쳤습니다. 마치 42년 전 그날처럼 말입니다.
많은 어린이도 부모 손에 이끌려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1979년 11월 4일은 이란뿐 아니라 전 세계 역사가 소용돌이에 휩싸인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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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부터 테헤란 남부 미 대사관 앞에 400여 명의 대학생이 모였고 이들은 "미국에 죽음을", "카터를 죽여라"라고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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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학생이 차도르 안에 숨긴 절단기로 대사관 정문 쇠사슬을 끊으면서 사건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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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몰려들자 당시 대사관 안에선 최루탄을 쏘면서 문을 걸어 잠그고 기밀문서를 닥치는 대로, 파기했습니다.
혁명 지도자 이맘 호메이니는 "두 번째 혁명이 성공했다"면서 "미 대사관은 간첩의 소굴"이라며 시위대를 지지했습니다.
이들은 미국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무려 444일간이나 인질로 잡고 '대미 항전'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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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의 국교가 끊어지고 대이란 경제 제재가 시작된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극적으로 탈출한 미국 외교관 6명의 이야기는 '아르고'라는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란은 옛 미국 대사관을 '승리의 기념관'으로 만들어 그날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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