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집권 ANC 최악 참패로 '새 연정 시대 진입'

입력 2021-11-05 19:24  

남아공 집권 ANC 최악 참패로 '새 연정 시대 진입'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종식 이후 지난 27년간 집권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지방선거에서 절반에도 못 미치는 득표로 참패하면서 새 시대가 열렸다.
ANC 당 대표인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공식 선거결과 발표 후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의 이익을 달성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이견을 조율하고 협력과 협업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아공은 대통령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준(準)의원내각제를 겸하고 있다.
이는 ANC가 전국 득표율 46%에 그쳐 수도 프리토리아와 경제중심 요하네스버그 등 주요 광역도시(메트로) 5곳에서 연정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데 따른 발언이다.
남아공 선관위(IEC)에 따르면 전체 213개 시의회(council) 가운데 70개가 과반 의석 정당이 없어 이른바 '헝(hung) 지방의회'로서 연립 시정부 구성을 위해 정당간 합종연횡이 불가피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제1당인 민주동맹(DA)은 22%, 급진좌파 경제자유전사(EFF)는 10%를 각각 득표하고 액션SA 등 군소 신생정당들이 약진했다.
과거 백인 소수정권 하에서 흑인 자유투쟁에 앞장선 ANC와, 경제적 특권층인 백인중심 정당이라는 지적을 받는 DA가 연정을 위해 협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ANC는 지난 10년 동안 경제 실정과 무능, 부패로 얼룩져 생활정치의 장인 이번 지방선거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거뒀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득표율은 54%였으나 이번에 8%포인트가 떨어졌다.
DA는 상대적으로 5년 전보다 5%포인트가 하락해 ANC의 실정에 따른 대안세력으로서 한계를 드러냈다. EFF는 강경 투쟁 이미지가 대중의 지지세 확장에 제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46%로 역대 최저였다.
비즈니스데이 등 현지매체와 외신에 따르면 정치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ANC의 참패가 '정당으로서 조종(弔鐘)'을 울렸다는 극단적 평가도 나온다.
당장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시간을 두고 지지율 추가 하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ANC가 과반을 달성하지 못했어도 여전히 대부분 지역에서 선두 정당이며 ANC 출신인 넬슨 만델라의 후광이 아직 남아 있다. 게다가 라마포사 대통령의 인기가 여당 지지율보다 10% 포인트가량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한 해석은 섣부르다는 반론도 있다.
지방선거 사상 최악의 성적표로 라마포사 대통령에 대한 당내 라이벌 세력의 공격이 있겠지만 ANC로선 그보다 더 나은 대체 주자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내년 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다시 추대돼 내후년 총선 승리로 대통령 재선을 노리고 있다.
다만 10년 전만 해도 ANC가 야당이 되거나 연정을 구성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연정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ANC가 집권당의 자리를 내주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분석도 대두한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달 뒤면 새 민주헌법을 만든 지 25주년이 된다면서 지방정부 구성에서 다양한 정당세력이 등장한 것은 헌정 민주주의의 성숙도라고 옹호했다.
이번 선거가 일부 항의 시위와 몇몇 시의원 후보 피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공정하고 자유로웠다는 평가는 90%가 넘는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선거 부정 시비가 강하게 불거진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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