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장가오리와 리윈디

입력 2021-11-06 09:00   수정 2021-11-06 09:01

[특파원 시선] 장가오리와 리윈디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최근 보름 사이 중국에서는 두 유명인의 성(性) 관련 문제가 잇달아 불거졌다.
3년여 전까지 부총리로서 중국 최고 지도부 일원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던 장가오리(張高麗·75)와 쇼팽 콩쿠르 우승 경력의 정상급 피아니스트 리윈디(李雲迪·39)의 사건이다.
전자는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장가오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과 함께 다년간 그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지난 2일 SNS를 통해 주장하면서 불거졌고, 후자는 지난달 하순 주민 신고에 의해 리윈디의 성매수가 드러난 사건이다.
둘 다 성 문제와 관련해 공인으로서 지탄받아야 마땅한 행동을 한 혐의를 받았는데 중국 사회의 후속 대응은 자못 달랐다.
장가오리 건에 대해 중국의 정부, 정부의 통제력 하에 있는 언론과 인터넷 대기업들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전직 최고위급 인사의 위신을 결과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피해를 고발한 펑솨이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은 검색 불가능한 상태가 됐고, 중국 네티즌들은 '방화벽'을 돌파하는 우회 경로로 외신을 보지 않는 한 이 일을 알기 어렵게 돼 있다. 매체들의 침묵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3일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때 관련 질문과 답변(외교와 무관한 사안이라는 취지)이 있었지만 외교부 홈페이지의 질의응답 전문 서비스에 그 내용은 빠졌다 .
리윈디 사건은 완전히 달랐다. 체포사실이 알려지기가 무섭게 거의 모든 매체들이 사건을 보도했고,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평론을 싣는 온라인 매체인 런민왕핑(人民網評)은 "흑백 건반에 황색(음란을 은유)을 용납할 수 없다"며 준엄하게 꾸짖었다.
리윈디는 최근 중국의 문화계 '홍색 정풍' 바람 속에 예술가로서 재기하기 힘든 나락으로 떨어진 듯 보인다.
장가오리 사건에 정적 견제 목적의 정치 공작이 개입됐을 수 있다는 추측까지 일부 외신에 의해 제기되는 가운데, 그 사건에 어떤 외부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 어떻게 귀결될지 등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은 문제가 드러난 뒤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현격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한 사람이 중국 사회의 '성역'에 몸담았던 인물이라는 팩트 말고는 이런 차이를 설명할 다른 것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공산당 내부의 치열한 경쟁과 견제를 뚫고 최고 지도부에 입성한 이후 장가오리는 당 내부의 감시는 받았을지언정 당 밖의 감시로부터는 거의 자유를 누렸을 것이고 공직을 떠난 이후로도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정치체제간의 우열을 떠나, 이런저런 욕구 앞에 취약한 인간에게 권력을 주되, 그 권력자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외부 시스템'이 없거나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권력자의 선함과 능력, 권부 안의 정화 시스템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회와 시원하게 되는 일이라곤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는 사회 중 어느 쪽의 리스크가 더 클지는 베이징 특파원 생활 내내 화두가 될 것 같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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