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1980년 미 신도들에 수산업개척 주문한 게 계기 돼"
"이후 유통망·식당 확장 통해 미 전역으로 초밥 확산"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미국에서 초밥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문선명 전 통일교 총재의 역할이 컸다고 뉴욕타임스(NYT) 7일(현지시간) '미국에서의 스시(초밥)에 얽힌 비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통일교를 창시한 문 전 총재는 1980년 교단이 소유한 미국 뉴욕의 뉴욕커 호텔에서 신도 수십명을 모아 놓고 '참치의 길'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고, 전 세계 기아를 끝낼 계획의 일환으로 수산업 개척을 주문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스시가 뭔지 아는 미국인은 거의 없을 정도로 초밥 인지도가 낮았다고 한다.
문 전 총재는 이 연설에서 "그대들은 수산업의 선구자이니라. 앞으로 나아가 길을 개척해서 번영으로 이끌어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수산물을 잡고 공정을 거친 뒤 유통망을 구축할 것"이라며 사업 과정을 전반적으로 관장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단순 돈벌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당시 문 전 총재는 전 세계 식량 문제를 해결할 자칭 '미래 식량 메시아'였다고 NYT는 평가했다.
이 연설이 나올 시점에 국제통일교회재단(UCI)은 이미 미국 내 조선소와 수산물 공정에 1천만 달러(약 118억 원)를 투자한 상태였다고 NYT는 전했다.
당시 연설 현장에 모인 신도들은 약 70명으로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이후 신도들은 사업자금으로 각각 100달러(약 12만원)를 건네받았고, 미국 50개 주로 흩어져 초밥 유통망을 개척하거나 초밥 가게를 여는 등 사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트루월드푸드라는 초밥 전문 회사를 키워냈다.
트루월드푸드는 영국, 캐나다, 일본, 한국 등 현재 약 20여 개 지사로 확장해 해산물뿐 아니라 장어 소스, 감귤, 모찌 아이스크림 등 초밥에 들어가는 재료 유통도 도맡았다.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트루월드푸드 사업을 하나로 묶어주는 데에는 종교의 역할이 컸다고 이 신문은 지적한다. 통일교는 직접 주관하는 결혼을 통해 다국적 부부를 탄생시키며 영주권 문제도 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초밥은 미국에서 단순히 음식 그 이상을 넘어 문화적인 의미까지 지니며 대중화에 성공하게 된다.
트루월드푸드의 모기업 트루월드그룹에 따르면 현재 북미에서 이 회사의 고객사는 8천300곳 이상으로 대부분 초밥 식당이다. 그룹의 연 매출은 5억달러(약 5천914억원)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총재는 사업 초반 각 지역 현장을 방문해 직접 관리 감독에 나서기도 했다.
한 신도에 따르면 당시 문 전 총재가 현장을 불시 점검해서 평소 준비에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그는 통일교 로고에서 착안해 트루월드푸드 브랜드 로고까지 직접 결정했다. 그는 초밥이 미국 곳곳으로 뻗어나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의사결정 등에서 여전히 막대한 권한을 행사했지만 세부적인 사항까지는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선명 전 총재의 자녀 문인진 전 통일교 미국 총회장은 "아버지가 트루월드푸드를 만들었다"며 "아버지가 그 프로젝트에 착수했을 때 초밥이 무엇인지, 회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세계가 초밥을 사랑하도록 만드셨다"고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문 전 총재는 1920년 태어나 15살 때 기독교인이 된 이후 영적 체험을 두 차례 겪으면서 통일교의 교리를 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현 통일교)를 창립한 이후 일본과 미국 등지에 선교사를 파견해 왕성한 해외선교 활동에 나섰다.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뒤 1972년 일본인 신도들과 미국으로 넘어갔고, 통일교 일본지부에서 보내는 자금을 바탕으로 초밥 사업을 키워냈다. 2012년에는 지병으로 별세했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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