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기류도…마땅한 묘수 없어
미국 USTR 대표, 오는 18일 방한…2011년 이후 처음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김영신 기자 = 최근 미국의 외교와 안보, 통상을 담당하는 주요 인사들의 방한이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 유럽연합(EU)과 철강 분쟁을 마무리한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를 상대로 본격적인 협력체계에 구축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해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행보에 맞춰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대미 투자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 한국의 중국 의존도 역시 높아 미중 사이에 끼어 난감해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 "미국, 공급망 재편 총력전"…美USTR 대표, 내주 방한
11일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전날 한국을 방문한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이날 외교부 당국자뿐만 아니라 정대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를 만나 공급망 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동아태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그가 첫 방한에서 우리 정부의 경제외교·통상 담당자를 별도로 만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달 18일에는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한국을 방문한다.
USTR 대표의 방한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논의가 한창이던 2011년 이후 처음이다. 타이 대표는 15일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 뒤 22일에는 인도로 건너간다. 타이 대표는 방한 기간에 공급망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양국 간 공조 강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존 오소프 미국 조지아주 상원의원도 최근 한국을 방문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잇따라 회동했다. SK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를 미국 생산거점으로 삼아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9일 미국을 방문해 지나 러먼도 미 상무장관과 회담하고,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양국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EU와 관계 개선을 마무리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국가에 공을 쏟고 있다"면서 "미국 내 여러 부처 인사들이 한국을 찾는 것은 공급망 재편을 위해 전방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반도체는 상무부가, 희토류는 에너지부가 담당하는 등 각 부처가 역할을 분담하고 USTR이 이를 총괄 관리하고 있다.
◇ 국내 기업들, 대미 투자에 속도 낼 듯…중국과도 줄타기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국내 기업들도 대미 투자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김봉만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미국에서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다 국내 기업들과 미국의 상호 이해관계가 많아 대미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은 총 44조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내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27일부터 5박 6일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당시 2030년까지 미국에 520억달러(약 61조1천52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역시 조만간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부지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미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공장 증설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와 오스틴 등을 공장 부지 후보지로 놓고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만간 미국을 방문해 공장 후보지를 직접 둘러본 뒤 최종 투자를 결정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028260] 합병·삼성바이오로직스 부정 회계 의혹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어 목요일마다 법원에 출석 중이다.
그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8일에는 재판이 열리지 않아 2주간의 재판 공백 기간을 이용해 미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미국과 보폭을 맞추면서도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특히 최근의 요소수 대란을 통해 언제든 중국이 '공급 조절'에 나설 경우 한국 산업계 전체가 휘청일 수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면서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봉만 실장은 "이번 요소수 사태를 계기로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산업이 마비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정부와 산업계 모두 체감하고 있고, 반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중 간 갈등은 어느 정도 계속 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중 사이에서 한국 기업이 샌드위치가 될 수 있지만, 미국에도 협조하고 중국에도 협조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분석했다.
안덕근 교수는 "전 세계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그 공급망 속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등 '현지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과잉 중복 투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또 공급망 간에 무역 분쟁이 촉발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향후 우리나라 산업 기반을 어떻게 재편할지가 큰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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