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인플레 우려…공급·수요 문제 겹쳐 내년까지 '불안'

입력 2021-11-11 11:30   수정 2021-11-11 12:16

커지는 인플레 우려…공급·수요 문제 겹쳐 내년까지 '불안'
한은 총재 "예상보다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당분간 지속될 것"
미·중 역대급 물가 상승률…"넘쳐나는 유동성도 문제"
경제 전문가들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물가상승 압력 낮아질 듯"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김아람 오주현 김유아 기자 = 공급 차질과 수요 확대가 맞물리면서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11일 경제동향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글로벌 공급 병목의 영향과 함께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수요측 물가 압력이 높아지면서 예상보다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번 회복기에는 과거 본 적 없는 공급병목이 나타나면서 생산활동이 제약돼 인플레이션이 확대된 점이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공급 병목 현상이 해소되고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줄어드는데 시간이 필요한 만큼, 아무리 일러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물가 불안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 증시와 금리 등 금융시장 역시 인플레이션 압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 미국 소비자물가 31년來, 중국 생산자물가 25년來 '최고 상승률'
지난 3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자산 매입 규모 축소(테이퍼링)를 발표하면서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에는 선을 긋자 '미국도 현 물가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해석과 함께 세계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이후 세계 곳곳에서 '역대급' 물가 상승률이 확인되면서, 인플레이션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10월보다 6.2% 뛰었다. 1990년 12월 이후 거의 31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4.6%)도 1991년 8월 이후 약 30년 사이 가장 높았다.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작년 동월 대비 13.5% 상승했다. 로이터 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 12.4%를 웃돌 뿐 아니라 1996년 이후 25년 만의 최고 기록이다. 석탄 채굴(103.7%), 석유·천연가스 채굴(59.7%), 석유·석탄 등 연료 가공(53.0%), 화학 원료(31.5%) 등 주로 원자재 관련 업종에서 물가 오름폭이 컸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전보다 3.2% 높아졌다. 2012년 1월(3.3%)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이후 9월까지 6개월 연속 2%대를 유지하다가, 2012년 2월(3.0%) 이후 처음으로 3%대에 올라섰다.


◇ 코로나 이후 유동성 넘치고 소비 살아나는데 공급은 막혀
이처럼 주요 국가들에서 물가가 치솟는 것은, 백신접종과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등으로 소비 등 경기가 살아나면서 재화·서비스의 수요는 늘어나는 데 비해 공급이 세계적 병목 현상 등으로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 인플레이션은 공급이 부족하거나(공급측 요인), 수요가 급증(수요측 요인)하면서 나타나는데, 지금은 두 요인이 겹친 상태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지난해 초 코로나19 발생 이후 각국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기준금리 인하 등 완화적 통화정책에 나서면서 거의 2년 가까이 시중에 너무 많이 풀린 돈(유동성)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나 세계나 비슷한 상황인데, 코로나가 회복단계에 들어가면서 수요는 늘어나지만 공급의 경우 병목현상도 있고, 서비스 측면에서는 그동안 문 닫은 곳도 있기 때문에 수요에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이 재편되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호주의 석탄을 수입하지 않는 조치 등이 그렇다"며 "아울러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른 것도 물가 상승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급 병목 현상 등도 있지만, 최근 물가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결국 넘쳐나는 유동성"이라고 지적했다.


◇ "물가, 위기는 아니지만 심각한 수준…내년 상반기까지 해결 어려워"
경제 주체들의 관심은 최근 물가 상승 추세가 심각한 수준인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집중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기 회복기에 나타나는 일시적이고 통상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내년까지 주의할 필요가 있는 위험 요소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공급이나 수요나 한쪽 요인에 따른 것이면,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해결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만약 공급 병목 현상이 해결되더라도 코로나19로부터의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수요가 견인하는 물가 상승 압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가 이날 거시경제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글로벌 공급 병목의 영향과 함께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수요측 물가 압력이 높아지면서 예상보다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도 "6.2%의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정상적인 수치는 아니다"라며 "위기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히 우려스러운 부분으로, 1년 내 해결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하준경 교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공급망 병목에 따른 물가 리스크(위험)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변수가 없다면 내년 하반기 정도에는 병목 현상이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 물가 상승률도 내년 중반께부터 기저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에 상승률 측면에서도 안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 역시 "공급망 회복,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제품 수요 감소 등으로 내년 하반기께 물가 안정이 가능할 수 있다"며 "반대로 말하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속 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인플레 우려 커지면 미국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도…한국 증시·환율에 부정적
인플레이션 우려는 실물경제 뿐 아니라 우리나라 금융·외환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수록 미국 연준이 예상보다 일찍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테이퍼링이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중에 풀리는 달러가 감소하면서 달러 가치는 높아지는(달러 강세) 대신 원화 등 다른 통화가 약세 압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인플레이션 때문에 미국의 통화 긴축 일정이 앞당겨질수록, 신흥국 통화와 주가 가치가 급락할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더구나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원/달러 환율은 상승하고, 수입물가가 올라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
박성우 DB금융투자[016610] 연구원은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분기 6%대 중반까지 고점을 높이고, 내년 1분기 상승률도 6%대 초반 정도일 것"이라며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서 연준의 조기 금리 인상을 두고 논쟁이 더 가열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제어하는 연준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겨울이 될 것"이라며 "내년 6월 말 테이퍼링이 끝나고 같은 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대 정도로 나와주면, 조기 금리 인상 우려가 어느 정도 누그러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shk99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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