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PI 31년 만에 최대 상승…유럽·중국도 '역대급'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전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공포가 불어닥치고 있다. '일시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물가는 역대급으로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은 이제 우려를 넘어 공포로 엄습하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가스 등 난방료부터 빵 등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인플레이션은 이제 전 세계 가정 곳곳까지 파고들고 있다.
◇ 미국 CPI 31년만에 최대 상승…유럽·중국도 '역대급'
11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오르며 1990년 12월 이후 31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5.4% 올라 2008년 8월 이후 최대폭으로 올랐는데, 10월엔 변동폭을 더 키운 것이다. CPI는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5%대 상승폭을 지속하더니 10월에는 6%대를 찍었다.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8.6% 올라 2010년 11월 자료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유럽의 경우 독일의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5%로 동서독 통일에 따라 물가가 급등했던 1993년 8월 이후 28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10월 소비자물가는 4.1% 상승해 1997년 통계집계 개시 후 최고치로 뛰어올랐고, 인접한 터키의 경우 19.9% 급등했다.
영국도 브렉시트 여파 등으로 3.1% 올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2% 중후반을 기록했지만 예년에 비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9월 7.4%였던 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월 중순 들어 7.8%까지 치솟았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10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3.5% 상승하며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6년 이후 25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나타냈다.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 1월 1.0%에 그쳤지만 이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5%이지만, 이는 작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 막대한 유동성·공급망 차질·유가 급등 겹쳐…"인플레 지속"
이처럼 물가가 급등하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풀었던 막대한 돈이 꼽힌다. 전례 없는 유동성으로 화폐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상품의 가치는 오른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그동안 푼 돈을 회수하기 위해 시장에 금리인상 시그널을 보내면서도 코로나로부터 회복하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까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
백신접종과 '위드 코로나' 등으로 소비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점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고, 전 세계 물류대란은 공급 부족 사태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유가 등 원자재 급등도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만 보더라도 12월물이 80달러대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1년 전 30달러보다 200% 가까이 오른 수준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는 미국의 추가 공급 요구에도 기존의 증산 방침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유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 에너지 가격이 1년 전보다 30% 상승해 물가 상승세를 주도했고, 독일도 난방유가 101.1% 오르는 등 연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한 경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이 연준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상승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말했던 연준 제롬 파월 의장도 최근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며 물가상승 장기화를 염려했다. 최근 연준이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 투자자들이 가장 큰 우려하는 것으로 긴축적 통화정책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꼽혔다.
억만장자인 투자자 레이 달리오는 "사람들이 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더 부유해졌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실질적인 부를 감소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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