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혼란 속 미중 패권다툼…자원 안보 강화 '불똥'
25조 전국민 지원금·50조 소상공인 보상 공약…물가자극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이달부터 시작한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과 함께 경기 회복을 기대했던 한국 경제에 순탄치 않은 앞길이 펼쳐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주요 2개국(G2, 미국·중국)을 중심으로 지구촌 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 영향권에 있다. 특히 대통령 선거(내년 3월 9일)가 다가오면서 표심을 겨냥한 여야 대선주자들의 '돈 풀기' 경쟁까지 벌어지면서 나랏빚 가중과 물가 자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당정 관계에서 정치 논리가 지배하고, 요소수 품귀 사태에서 보듯이 정부가 위기관리 능력을 제때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대내외 불안 요인의 영향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 한국 경제 흔드는 각국의 '자원 안보·무기화'
세계 각국의 '자원 안보 전쟁'에서 뒤처진 한국은 언제든 '제2의 요소수 사태'가 터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만 놓고도 우리나라의 물류·교통 마비와 경제 충격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정부가 중국발 요소수 대란의 징후를 제때 파악하지 못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우리 산업에 필요한 전략물자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처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 대란 때처럼 또다시 수업료를 치른 셈"이라고 지적했다.
거의 전량을 중국산에 의존하는 요소는 정부가 차량용 물량을 석 달 치 확보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고는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다른 품목에서도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한국이 수입한 품목 1만2천586개의 31.3%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80% 이상이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율이 80% 이상인 품목은 1천850개로 미국(503개), 일본(438개)보다 월등히 많았다.
글로벌 공급망 혼란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자원의 안보화, 무기화 추세가 짙어지는 점은 국내 산업과 경제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재고 등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 중국이 반발하는 데서 보듯이 공급망 패권을 둘러싼 G2의 다툼 속에서 우리나라의 생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 지구촌 인플레 공포 확산…국내도 먹구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먹구름은 한국 경제에도 드리우고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각국이 푼 풍부한 유동성과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방역 봉쇄 완화·해제, 소비 회복,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이 맞물린 결과다.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6.2% 올라 31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같은 달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작년 동월 대비 13.5%로 역대 최고치다.
10월 소비자물가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4.1%), 독일(4.5%) 등 유럽에서도 많이 올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달 3일 '물가 상방 리스크 요인의 주요 내용 및 쟁점' 보고서에서 "미국과 중국은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고 우리 경제의 수입 의존도도 높아 양국의 물가 상승은 우리 물가의 상방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물가는 이미 뛰고 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6개월 연속 2%대를 보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월에 3%대(3.2%)로 올라섰다. 9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10월 수입 물가는 1년 전보다 35.8% 뛰었다. 13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올해 물가상승률 목표치 1.8%,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치 2%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글로벌 공급 병목의 영향과 함께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수요측 물가 압력이 높아지면서 예상보다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은 위드 코로나로 경제가 활성화되는 단계인데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미국도 인플레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 돈줄을 죌 수밖에 없고, 우리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대선주자들의 돈풀기 공약…"물가 자극 등 부메랑 우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 대선이라는 큰 정치적 변수가 등장했다.
막대한 재정을 동원해야 하는 선심성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전 국민 추가 재난지원금(1인당 30만~50만원 총 15조~25조원) 지급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50조원의 자영업자 추가 손실보상을 내세웠다.
나라 살림을 맡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들 후보의 구상에 대해 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 국가채무는 965조3천억원으로, 내년에는 1천조원을 넘게 된다. 현 정부 들어 국가채무 증가 규모는 400조원에 이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2021 하반기 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경기 부양 효과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대규모 재난지원금이 물가 상승을 부추겨 취약계층의 실질 소득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봉 교수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든, 소상공인 50조원 추가 보상이든 국가채무가 더 늘어나고 물가가 더 뛰어 국민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금융권 이용이 어려운 생계형 자영업자에 대한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는 "더 많은 지원을 하려는 대선주자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원자재 파동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내년에는 그동안 코로나19 사태로 미뤄둔 기업 구조조정이 표면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경기가 V자 회복세를 보일지도 의문인 상황에서 정부가 대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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