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올리비에 드 슈터 유엔 극빈·인권 문제 보고관이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는 지중해 연안의 중동국가 레바논이 '실패한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드 슈터 보고관은 12일(현지시간) 레바논 방문 일정을 마감하는 기자회견에서 "레바논은 아직 실패한 국가는 아니지만 국가가 국민을 건사하지 못한 채 실패한 국가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진국에서 볼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레바논에서 봤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드 슈터 보고관은 "전례가 없는 위기 앞에서 정부의 무대책은 레바논 국민을 엄청난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국민은 하루하루 생존에 급급한데 정부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정치적 분열 속에 현지 화폐가치 폭락에 손쓰지 못한 당국에 이런 위기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드 슈터 보고관은 "경제를 바꾸기 위한 신뢰할만한 계획 수립, 불평등 완화, 조세 정의 보장, 정치적 교착상태 방지 등이 없다면 국제사회는 레바논 정부의 개혁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레바논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 내전 후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우선시해 독특한 정치 시스템을 도입했다.
세력 균형을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원칙을 유지해왔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권력분점은 레바논 정계의 부패와 무능을 낳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2019년 시작된 경제 위기는 코로나19 대유행과 지난해 8월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라는 악재를 만나 깊어지면서 레바논은 국가 붕괴 직전의 위기로 내몰렸다.
특히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최근 2년간 90% 이상 폭락하면서 연료 및 생필품 수입이 막히고, 한때 전력공급이 완전히 끊기기도 했다.
세계은행(WB)은 최근 레바논의 경제 위기를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불황으로 진단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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