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와 부통령 선거서 '원팀' 출마
"정치적 고향인 북·남부 영향력 합쳐 강한 경쟁력 갖춰"
독재자·스트롱맨 일가 조합에 인권단체 강한 반발 예상
(하노이=연합뉴스) 김범수 특파원 = 내년 5월 필리핀 대통령·부통령 선거에서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과 현직 대통령인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딸이 러닝메이트로 출마한다.
필리핀을 철권 통치한 독재자와 수천명이 숨진 '마약과의 전쟁'을 주도한 스트롱맨 일가의 동맹이라는 점에서 인권단체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1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64)과 사라 두테르테(43) 다바오 시장은 내년 대통령·부통령 선거에 러닝메이트로 출마한다고 발표했다.
사라 시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마르코스와 같은 티켓을 지니고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속한 정당은 마르코스와 연계돼있고 그를 지지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면서 "나는 이런 요구에 응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사라 시장은 여성인 글로리아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이 이끄는 라카스-CMD당으로 소속을 바꾼 뒤 부통령 후보로 등록했다.
마르코스도 사라와의 제휴를 공식화했다.
그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내년 5월 치를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통합된 리더십을 추구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내년 5월 9일 선거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별도로 선출한다. 또 상·하원 의원과 관료직 1만8천여명도 함께 선출된다.
선친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은 지난달 5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통령 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는 KBL(신사회운동)을 이끌고 있다.
앞서 사라는 지난달에 다바오 시장직에 재출마하겠다면서 후보 등록을 마쳤으나 지난 13일 부통령 후보로 등록을 변경했다.
이들이 러닝메이트를 이루면서 내년 선거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두테르테는 남부 지역에서, 마르코스는 북부 지역에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마르코스 가문은 북부 지역에서 '왕조'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지난 1986년 시민혁명인 이른바 '피플스 파워'가 일어나면서 권좌에서 물러난 뒤 3년 후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이후 마르코스 일가는 1990년대에 필리핀으로 복귀한 뒤 가문의 고향인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에서의 정치적 기반을 배경으로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아들인 마르코스는 일로코스노르테주에서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선출됐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는 1995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세번 연임에 성공했다.
그의 딸 이미는 일로코스노르테주에서 3선 주지사를 지냈다.
현재 대통령 후보로 등록한 이들은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 외에 복싱 영웅인 매니 파키아오 상원의원, 배우 출신인 프란시스코 도마고소 마닐라 시장, 두테르테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온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 판필로 락손 상원의원, 로날드 델라 로사 전 경찰청장 등이 포함된다.
또 부통령 후보 등록을 한 크리스토퍼 고 상원의원도 대통령 후보로 등록을 변경했다.
그는 두테르테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마르코스는 수위를 기록하면서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필리핀 여론조사기관인 SWS가 지난달 20∼23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마르코스는 로브레도 부통령 등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당시 설문조사에서 고 상원의원은 대선 주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편 과거 독재자의 아들과 스트롱맨의 딸이 내년 대통령 선거와 부통령 선거에서 원팀으로 나서면서 인권단체들의 강한 반발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의 인권 및 정치범 지원 활동가들은 이달초 선관위에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의 대선 출마를 막아달라면서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57쪽 분량의 청원서에서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이 20여년 전 탈세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기 때문에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 카라파탄도 이들 가문의 동맹과 관련해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단히 심각한 위협"이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bum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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