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미국에 기댈수 없다…EU, 유럽군 창설 논의 본격화

입력 2021-11-17 15:05  

더는 미국에 기댈수 없다…EU, 유럽군 창설 논의 본격화
2025년까지 5천명 규모 합동군 창설 계획…역내 분쟁 신속 개입
독자적 작전수행 능력 보유…'전략적 자율성' 확대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유럽연합(EU)이 분쟁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자체 작전 능력을 보유하기 위한 유럽군 창설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사력에 안보를 의존했지만 EU 자체로 합동 전력을 보유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변화가 감지된다.
EU 회원국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은 15∼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유럽군 창설과 운용 방안을 논의했다.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EU 집행위원회 보안 문서에 따르면 EU는 2025년까지 병력 5천명 규모의 유럽 합동군을 창설할 계획이다.
유럽 합동군 창설 계획 초안은 육군, 해군, 공군력을 모두 포함하는 '신속대응군'이 적대적인 환경에서 구조 및 대피, 또는 안정화 작전과 같은 모든 범위의 군사적 위기관리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군수품 보급, 장거리 공중 수송, 작전 통제 등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보유하는 방안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략적 나침반'이라고 명명된 유럽군 창설안은 프랑스가 EU 의장국이 되는 내년 3월에 최종안이 승인될 예정이다. 유럽군 창설안이 확정되면 EU는 2023년부터 정기적으로 합동 군사훈련을 할 계획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무기체계 증강과 군사 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약 60개의 합동 군사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렐 대표는 EU 회원국이 공동의 '전략 자산'과 '전략적 행위 능력'을 제공할 필요성에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EU은 1990년대 후반부터 자체 방위기구 창설을 추진했다.
EU 회원국은 5만∼6만명 규모의 합동군 창설 계획에 합의하기도 했으나 비용 문제 등으로 지금까지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같은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 정책에 더는 휘둘릴 수 없다는 인식으로 유럽군 창설 논의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미국·영국·호주의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 출범으로 미국에 대한 EU 회원국의 불만이 커진 것도 이번 논의의 배경이다.
호주는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는 안보 동맹에 따라 미국, 영국의 지원으로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기로 했는데 이는 앞서 프랑스 업체와 맺은 560억 달러(약 66조원) 규모의 디젤 잠수함 계약이 파기될 위기에 처했다.
프랑스 정부는 동맹에 배신당했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항의 표시로 미국 주재 대사를 한때 불러들이기도 했다.


이런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 EU가 경제통합에 이어 정치통합을 완성하려면 정치적 통일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유럽 국가에 나토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한 것도 자체 방위군 창설에 연료가 됐다.
미국은 나토에 져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어 유럽군 창설에 긍정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EU 자체의 군사력은 나토군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U 회원국 정상은 지난 2월 안보와 방위 분야에서 EU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능력과 책임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EU 대외관계청(EEAS)이 마련 중인 EU 안보방위 전략을 내년 초 채택을 목표로 진전시킬 것을 다짐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우리는 방위 투자를 늘리고 군사적 능력과 작전 준비 태세를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U의 주도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 역시 유럽군 창설에 적극적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가 진정한 유럽의 군대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유럽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토 창설 멤버인 프랑스는 1960년대 중반 나토군에서 병력을 철수했다. 그 이후 나토의 정치기구에만 참여하고 있는 프랑스는 나토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방위 기구를 추구해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언젠가 실질적이고 진정한 유럽군을 창설하기 위해 비전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마크롱 대통령 편에 섰다.
비교적 늦게 EU와 나토에 가입한 동유럽권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폴란드, 체코 등은 나토를 통해 미국에서 안보를 보장받는 것이 서유럽 주도의 방위기구를 통한 안전보장보다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국가는 EU 자체 병력만으로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본다.
songb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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