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요에 따라 방출 안배"…전문가들 "중국도 방출 수요 있어"
에너지 문제를 외교카드로 삼는데는 신중할 것이란 전망도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전략 경쟁국인 미국으로부터 전략 비축유 방출 요청을 받은 중국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 중 정부 "수요에 근거에 비축유 방출 안배"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중국은 실제 상황과 수요에 근거해 비축유 방출을 안배하겠다"면서 방출 규모, 시기, 방식 등 관련 정보는 적절한 시기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비축유 방출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한국시간)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의 첫 영상 정상회담에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이후에도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의 요청에 응하는 형식을 피하되, 국내 사정과 국제 석유시장 상황을 감안해 자주적으로 결정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은 지난 9월 자국 산업상 필요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전략 비축유 738만 배럴을 푼 전례가 있다.
중국은 2019년 이래 비축유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규모가 약 2억2천만 배럴(15일치)이라는 추정이 국제 컨설팅 업체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중국이 작년 봄 2년치 석유를 대량 구매했다가 그해 가을 유가가 상승했을 때 상당부분 되팔아 외화를 획득한 이후 비축분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 이후 경제·군사 영역에서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지만 전략 비축유 부문은 국력에 상응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이 자국내에서 제기되자 중국은 2007년 국가비축유센터를 설치해 관리 시스템을 강화했다.
이어 2016년 발표한 국가석유비축 조례는 비축유를 정부 비축분과 기업 의무 비축분으로 구분해 관리하도록 했다.
◇ 중국 비축유 2.2억 배럴 대미 지렛대?
그렇다면 현재의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의 비축유 방출이 대미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중국 관영 영자지인 글로벌타임스는 24일 중국 정부의 비축유 관련 입장 발표 전에 전문가 인용 형식으로 보도한 기사에서 "중국은 호의로 비축유를 방출함으로써 미국이 치솟는 유가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을 억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미국은 중·미 협력을 위한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부분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관영 매체의 인터뷰에 응한 중국 전문가들은 대미외교 차원의 맥락보다는 중국의 자체적 방출 수요를 강조했다.
대외경제무역대 둥슈청 중국국제저탄소경제연구소 집행소장은 정부 발표 하루 전인 지난 23일 환구시보에 "중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 구성원이 아니며 미국의 결정이 중국을 구속할 수 없다"며 "비축유 방출 여부 결정은 중국이 완전히 자주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의 석유 대외 의존도가 갈수록 상승해 지금 소비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석유의 비축이 중국 경제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둥 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가가 갑자기 치솟아 중국의 석유 수입에 영향을 미치고, 국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석유 비축분 방출은 자연스러운 일로, 자체 수요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또 수입성 인플레이션 영향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비축분을 풀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또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의 에너지 전문가인 왕융중은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미국은 비축유 방출의 동기가 있지만 중국은 당장 가격 안정을 위해 비축유를 풀어줘야 할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중·미 양국은 석유 소비 대국으로서 석유 가격을 억제하는 데에는 공통의 이익을 갖고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한 양국의 조율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러시아 등과의 협상을 진전시켜 증산 압력을 더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세계적인 에너지 안보와 연결된 사안의 엄중성과 특수성을 감안할 때 미·중 간 전략 경쟁 국면이라 하더라도 중국이 에너지 문제를 카드로 삼는 것에는 신중을 기할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치열하게 패권을 다투는 국가들 간에도 금융과 더불어 에너지 문제는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한 카드로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금융과 에너지는 세계 경제의 뿌리에까지 연결돼 있는 것이어서 한쪽에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 자신도 피해를 볼 수 있음을 미국과 중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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