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일 로마·피렌체·베네치아서 '흥보가' 릴레이 완창
"국악은 '죽은 음악?' 모르는 말씀…아직 성장 잠재력 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한국을 대표하는 판소리 명창 김정민씨가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무대에 선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흥보가 이수자인 그는 7일(현지시간) 로마를 시작으로 피렌체(10일), 베네치아(15일)에서 흥보가 판소리 완창 공연을 한다.
판소리 완창은 초인적인 체력과 열정이 필요한 일이다. 장장 3시간 이상 오롯이 혼자서 쉼 없이 무대를 이끌어야 한다.
흥보가에서 김씨는 홀로 흥보와 놀보 등 등장인물 15명을 연기하고 노래한다. 창본집 기준 65쪽, 글자 수로는 3만2천764자 분량에 달한다. 이를 모두 외워 북장단 하나에 맞춰 창을 토해낸다.
보통의 국악인이 평생 한 번을 하기 어렵다는 판소리 완창을 불과 일주일 새 세 차례 연이어 한다는 것이니 그 가치를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지난 8년간 김씨의 완창 횟수는 16회, 연간 두 차례다. "판소리 역사에 남을 일"이라는 평가도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6일 로마에서 만난 김씨는 역사적인 이탈리아 릴레이 판소리 완창을 앞두고 부담이나 긴장보다는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시차 탓에 피로가 덜 풀렸을 텐데도 시종일관 자신감 배인 미소가 흘렀다.
"오페라의 본고장이라는 이탈리아에서 우리 전통 음악을 소개하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큽니다. 이탈리아에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코로나를 뚫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가 이탈리아에서 흥보가 완창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인 2019년 12월에는 밀라노에서 흥보가를 완창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최고의 무대였다"며 엄지를 치켜드는 현지 관객도 많았다고 한다.
판소리는 관객과 호흡이 중요하다. 명창은 노래하고 관객은 추임새를 넣으며 공연에 참여해 생동감을 더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관객은 다르다. 그들은 마치 오페라를 보듯 판소리를 감상한다.
김씨는 밀라노 공연 당시 '오페라글라스'로 자신의 미세한 몸동작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관객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무언의 추임새'라고 느꼈다고 전했다. 생소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실 오페라와 판소리는 동서양의 거리만큼이나 다르면서도 흡사하다. 판소리는 일인극이고 오페라는 다인극이지만 무대에서 노래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같다.
오페라에 익숙한 이탈리아인이 비교적 쉽게 판소리를 이해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테다. 밀라노 공연 후 한 현지 관객은 "판소리가 오페라의 원조일 수 있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호응은 지금도 당연히 유효하다. 이번 로마 공연 역시 90석 전석이 매진돼 일찌감치 흥행을 예감케 했다. 이 가운데 최소 70석은 현지인 몫이다.
좌석을 추가 확보해달라는 현지 관객의 요청에 주최 측이 양해를 구하느라 진땀을 흘렸을 정도였다.
공연 홍보를 위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소개 영상에는 '누가 랩이 서양 음악이라고 했나. 랩은 한국에서 나온 음악임이 분명하다'는 내용의 이색적인 댓글까지 달려 눈길을 끌었다. 김씨의 속도감 있는 창법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피렌체는 350석, 베네치아는 188석으로 로마보다 객석 규모가 훨씬 크지만, 현지인의 관심이 높아 마찬가지로 '꽉 찬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김씨는 1994년 개봉한 판소리 영화 '휘몰이'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배우로서 성공 가도가 열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 판소리의 전통을 잇는 길을 택했다. 조금 덜 주목받는 길이지만 더 가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열정 하나로 국내 판소리계를 평정한 김씨는 이제 '판소리의 세계화'를 바라본다. 2019년 판소리 완창 첫 해외 공연지로 이탈리아를 택한 것도 '예술의 본고장'에서 먼저 인정받고 싶다는 '오기'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프랑스에서도 흥보가 완창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지속해서 세계 무대의 문을 두드린다는 계획이다.
성악에 조수미가 있듯 한국 판소리의 '프리마돈나'(Prima Donna·오페라의 주역 여성가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는 바로 김정민이라는 자존심과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김씨는 "한국의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듯 이번 해외 공연이 한국 전통 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씨앗을 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많은 분이 국악은 '죽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판소리는 아직도 성장 잠재력이 크다"며 "제대로만 알려진다면 순식간에 퍼져서 전 세계에서 만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탈리아 관객을 맞이하는 소감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갖고 왔습니다. 함께 호흡하고 느끼면서 한국 전통 음악 세계에 흠뻑 젖어드는 경험을 해보시길 기원합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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