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서 극우 카스트 꺾어…내년 3월 칠레 최연소 대통령 취임
2019년 시위 때의 '변화 열망'이 표심으로…구조적 변화 예고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학생운동 지도자 출신의 35세 젊은 좌파 정치인 가브리엘 보리치가 차기 칠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년 전 칠레를 뒤흔든 대규모 시위에서 표출됐던 변화를 향한 열망이 정권교체로 이뤄졌다.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좌파연합 '존엄성을 지지한다'의 후보로 출마한 보리치는 약 55.9%를 득표했다.
극우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5) 후보(득표율 44.1%)에 10%포인트 이상 앞서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난달 1차 투표에선 카스트가 27.9%, 보리치가 25.8%를 각각 얻었는데, 보리치가 결선에서 역전에 성공했다.
개표 초반 일찌감치 승패가 갈리자 카스트 후보는 곧바로 패배를 인정하고, 보리치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했다.
보리치 당선인은 내년 3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의 후임으로 취임해 4년간 칠레를 이끌게 된다. 취임일 기준 36세로,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된다.
이날 투표율은 55%를 웃돌아 의무투표제 폐지 후 치러진 선거 가운데 가장 높았으며, 보리치는 역대 가장 많은 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된다고 라테르세라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그는 승리가 굳어진 뒤 지지자들 앞에 서서 "모든 칠레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통합의 메시지를 전했다. "구조적인 변화를 위해 책임감 있게 나아갈 것"이라며 국민의 사회적 권리 확대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
보리치 당선인은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 출신으로, 칠레대 재학 중이던 2011년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시위를 이끌었던 지도자 중 한 명이다.
20대 때인 2014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이번 대선을 앞두고 좌파연합 경선에서 유력 후보였던 칠레공산당 소속 다니엘 하두에 산티아고 레콜레타 구청장을 꺾었다.
경선 승리 후 그는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다면 이젠 신자유주의의 무덤이 될 것"이라면서 "젊은이들이 칠레를 변화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대선 기간 그는 증세와 사회지출 확대 등을 공약했다.
보리치의 승리는 2년 전인 지난 2019년 칠레를 뒤흔든 사회 불평등 항의 시위의 산물로도 볼 수 있다.
당시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에 대한 분노는 교육·의료·연금 등 불평등을 낳는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다.
이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정권(1973∼1990년) 시절 제정된 현행 헌법 폐기와 새 헌법 제정 결정으로 이어졌다.
시위 과정에서 피노체트 정권의 신자유주의 유물에 대한 거부감과 세바스티안 피녜라 중도우파 정권에 대한 반감도 커졌고, 이는 정권교체와 새로운 지도자 출현의 발판이 됐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피노체트를 옹호하는 극우 카스트가 1차 투표 1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결선투표에선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변화를 향한 칠레 국민의 열망 속에 승리를 일궈낸 보리치는 현재 제헌의회가 작성 중인 새 헌법 초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치르는 임무를 맡게 된다.
새 정권이 출범하고 새 헌법이 제정되면 칠레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가 휘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보리치 후보의 당선으로 칠레엔 미첼 바첼레트 전 중도좌파 정권 이후 4년 만에 다시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앞서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등이 최근 3년 사이 줄줄이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바뀐 데 이어 칠레에서도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중남미에선 좌파의 우세가 더 뚜렷해지게 됐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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