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 탈피' 대만, '반도체 절실' 미국 이해관계 일치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지난 18일 대만 국민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가축 성장 촉진제인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안건이 부결됨에 따라 미국과 대만 간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한층 속도를 낼지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안건이 통과됐다면 작년부터 급물살을 탄 미국과 대만의 경제협력 강화 흐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예상됐기에 미국과 대만의 FTA 논의에 중대한 잠재적 장애물이 제거됐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 싱크탱크인 독일마샬펀드의 아시아 담당 책임자 보니 글레이저는 지난 18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대만 유권자들이 돼지고기 수입 금지를 승인했다면 미국과 대만의 무역 관계에 중대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며 이번 결과로 미국과 대만이 관계가 복잡해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대만 내부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됨에 따라 미국과 대만이 향후 FTA 논의를 빠르게 진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쑹원디(宋文笛) 호주국립대 연구원은 "미국은 아마도 대만과 무역 협상을 진전할 더욱 강한 의지를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교가에서는 미국과 대만이 이미 실질적으로 FTA 체결을 위한 방향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대만 정부는 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근본적 수출 구조 다변화 차원에서 오랫동안 미국과의 FTA 체결을 희망해왔다.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총통 시절인 2010년 중국과 사실상의 FTA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하고 나서 대만의 전체 수출에서 대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을 정도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간 경제 통합은 급진전했다.
중국을 빼고 나면 대만이 FTA를 맺은 나라는 싱가포르와 뉴질랜드 정도에 그친다. 대만 정부가 현재의 상태를 '고립'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대만은 그간 세계적인 FTA 확산 흐름에서 비켜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만 정부는 미국과 FTA를 추진하는 한편 지난 9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신청했다.
미국 측도 큰 틀에서 대만과의 경제 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껴 양자 간의 이해관계가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모습이다.
우선 미국은 미중 신냉전 본격화 후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초 기지로서의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외교·군사·경제·기술 등 전 영역에 걸쳐 대만과 협력을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최고 수위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평가다.
시야를 경제 분야로 좁혀봐도 미국은 경제 안보 측면에서 대만과의 반도체 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신냉전, 세계 반도체 공급난 속에서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대만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반도체 수급 문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공급망 회의를 열고 챙길 정도로 중대 현안으로 격상됐다.
TSMC가 작년 5월 대만 바깥에서는 처음으로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최첨단 미세 공정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것은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미국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미중 경협의 실질적 진전 속도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차이잉원 정부가 작년 12월 대만 내 일각의 거센 발발에도 정치적 결단을 내려 '락토파민 돼지' 수입 허가 행정명령을 발동하자 미국 역시 지난 6월 중국의 거친 반발을 무릅쓰고 미국·대만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회담 재개로 화답했다.
TIFA는 미국이 주요 무역 상대와 무역 확대 방안 및 미해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도로 통상 FTA를 맺기 전 단계로 여겨진다.
TIFA의 틀 안에서 양측이 특정 품목의 관세 문제부터 노동, 지식재산권 등 다양한 통상 현안을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
앞서 미국과 대만은 1994년 TIFA에 서명하고 총 10차례 회담을 진행하면서 통상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전임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이 보호주의 정책을 펼친다고 불만을 품고 2016년을 마지막으로 관련 회담을 중단했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5년 만에 이 대화 채널을 복원한 것이다.
이렇게 열린 지난 6월 11차 TIFA 회담은 미국과 대만이 나아가려는 방향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줬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과 대만은 반도체 등 산업의 공급망 안보, 탄소 배출 등 환경 문제, 노동자 권익과 복지, 디지털경제와 신기술 발전,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는데 이는 FTA로 발전하는 단계를 염두에 둔 사전 정지 작업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5년 만에 재개된 회담에서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하면서 미국과 대만이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 동맹'을 추구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대만이 미국과의 FTA를 통해 관세 인하를 통한 수출 경쟁력 제고 같은 가시적 실리를 챙기려 한다기보다는 더 많은 나라와 FTA 체결로 나아가기 위한돌파구로 삼으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11차 TIFA 회담과 관련한 기사에서 "(미국과의) FTA는 차이잉원 정부에 정치적으로 대단한 성취가 될 것"이라며 "대부분의 대만 상품이 이미관세 없이 미국에 수출되지만 미국과의 FTA는 대만이 다른 나라들과 FTA를 체결하는 데 정치적 보호막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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