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코로나 경고 2년…의사 리원량 '디지털묘지' 찾는 중국인들

입력 2021-12-31 14:40  

첫 코로나 경고 2년…의사 리원량 '디지털묘지' 찾는 중국인들
리원량 웨이보에 추모 글 이어져…"역사가 당신을 압니다"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코로나19 확산을 알리는 첫 경고음이 나온 지 2주년을 맞아 많은 중국인이 '호루라기를 분 사람'(내부고발자)으로 불리는 고 리원량(李文亮·1986∼2020) 의사의 '디지털 묘지'를 찾아 추모하고 있다.
리원량이 우한(武漢)에서 정체불명의 호흡기 질환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지 2주년을 맞은 30일부터 그가 생전 쓰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에 방문객이 크게 늘며 하루 수천 개의 추모글이 잇따라 달리고 있다.
한 누리꾼은 "리 선생님, 역사는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또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는 글을 남겼다.
다른 누리꾼도 "지금 와서 보니 마스크는 전염병을 막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말을 가리고 있다"며 "부디 하늘에서는 따뜻한 햇볕과 발언의 자유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리원량은 2019년 12월 우한에서 서서히 퍼지던 코로나19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당시 중국 당국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심각한 호흡기 질환의 전파 소식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중국 우한중심병원의 안과 의사이던 리원량은 2019년 12월 30일 의대 동창들의 단체 대화방에 "우리 병원에서 7명이 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경고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이 재전파를 통해 급속히 퍼지면서 당국은 결국 '원인 불명 폐렴'이 유행 중이라는 사실을 대중 앞에서 공개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2020년 1월 3일 공안에 불려가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긴 반성문 격인 '훈계서'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이후 그 자신도 당시 우한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지인 우한 수산도매시장 상인을 진료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고 그해 2월 7일 병상에서 숨졌다.
그는 숨기지 직전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나는 헛소문을 퍼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의 건강한 사회에서는 한목소리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리원량의 사망으로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 당국의 부적절한 대처에 대한 중국인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결국 당국은 리원량 처벌을 취소하고 그를 '열사'로 추서했다.
하지만 리원량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은폐·축소에 급급했던 중국 당국의 어두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민감한 영웅'이었기에 이후 중국에서 리원량을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있다.
작년 이맘때 베이징의 설치 미술가 왕펑(王鵬)은 리원량 추모 전시회를 준비했지만 당국으로부터 "국가에 먹칠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고 그의 작업실은 강제 철거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원량이 생전 쓰던 웨이보는 중국에서 리원량의 추모가 허락된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고 나서 2년이 지나는 동안 중국 당국은 대대적인 내부 선전을 통해 부적절했던 초기 대응에 관한 집단 기억을 지우고 자국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방역 성과를 낸 나라로 치켜세우고 있다.
실제로 중국을 바라보는 외부 세계의 관점이 철저히 통제된 가운데 이런 선전은 이제 코로나19의 '제로 그라운드' 격인 우한 시민들을 포함해 절대다수 중국인의 사고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통곡의 벽'으로 불리기도 하는 리원량의 웨이보 계정은 중국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시대와 관련해 당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의견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되고 있다.
물론 이곳에서도 노골적인 정부와 공산당에 관한 비판은 금기시되기에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이견'을 표출한다.
한 누리꾼은 이날 이곳에 2년 전 리원량이 공개했던 '훈계서' 사진을 다시 올리며 "2년이 됐다"고만 적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그 의사의 죽음은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그의 SNS 계정은 다른 곳에서는 밝힐 수 없는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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