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최근 대규모 시위는 연료 가격을 비롯한 물가 폭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저변에는 30여년 통치자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깔려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7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인들의 분노는 국가안보회의 의장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올해 82세인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구소련 시절인 1989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최고통치자인 제1서기(서기장)직에 올랐고,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부터 2019년 자진 사임할 때까지 근 30년간 대통령을 지냈다.
대통령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그는 이후에도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유지하고 '국부'(國父) 지위를 누리면서 '상왕 정치'를 해왔다.
현 대통령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도 그가 낙점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수도 아스타나의 명칭을 그의 이름을 딴 '누르술탄'으로 바꿨다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에너지와 금속 분야에서 대규모 외국 투자를 유치하고 러시아와 중국 등 인접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구소련 붕괴 직후 핵무기를 포기하고 러시아와의 경제 재통합을 추진하지 않았고 집권 20년까지는 강력한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을 추구하며 서구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통치 기간 반대 세력을 용납하지 않고 언론 자유를 탄압하면서 소련 붕괴 이후 민주적 자유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그 일가는 카자흐스탄 경제와 정부 요직을 장악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2019년 대선 당시에도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세력의 장기 독재와 전횡,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악화한 경제난에 대한 누적된 국민 불만이 에너지 가격 인상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제가 먼저고 그다음이 정치'라는 나자르바예프 체제의 구호가 작동을 멈춘 가운데 개혁의 전망은 보이지 않으면서 불만이 고조됐다는 것이다.
이번 시위 사태에서 일부 시민은 정치적 대변화만이 실질적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으며 "노인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지난 5일 그의 고향인 알마티주(州)에서는 시위대에 의해 동상이 끌어내려지기도 했다.
이번 시위로 카자흐스탄 내각이 총사퇴하고 전국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넘겨받아 직접 지휘할 것이라고 밝혔고, 시위 대응을 위해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소속 평화유지군을 요청한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시위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시대의 종식'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정치리스크 컨설팅그룹 프리즘의 벤 고드윈은 전·현직 대통령 간의 '내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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