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미 신뢰조치 재고' 폭탄성 발표…관심끌기 전략 해석
외신 "'화염과 분노' 시대 회귀 불안"…美, 신중 대응할 듯
(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출범 1주년을 맞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재개 검토 선언이라는 '뇌관'에 맞닥뜨렸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한국시간 20일 오전 6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그동안 취해온 대미 신뢰조치에 대해 재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지난 2018년 4월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유예) 선언 후 45개월만에 대미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시사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북한이 이를 공개한 시간은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막 시작하는 시간(미국 동부시간 19일 오후 4시)이었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북한이 작심하고 시간을 맞춘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취임 1주년 '선물'을 받은 셈이 됐다.
북한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 때인 작년 3월 25일에도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린 바 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회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탄도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며 "긴장 고조를 택한다면 상응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이날 111분간 진행된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1주년 회견에선 '북한'이라는 표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미리 준비한 모두발언에서는 물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과정에 질문도 없었고, 대통령의 언급도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문제 등 경제 상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의 백신 접종 등 미 국내 상황을 설명했고, 이어진 문답도 경제와 대유행, 투표권 확대법과 '더 나은 미국 재건 법안'(Build Back Better Act), 중간선거 등의 이슈로 몰렸다.
외교·안보 현안 역시 초미의 관심사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부에 집중됐다. 미국이 최대 위협으로 규정한 중국에 대한 언급도 별로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우선순위 이슈에 북한 문제가 가려진 모양새가 됐다.
지난 1년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대해 언급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작년 3월 기자회견 직후인 4월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는 북한과 이란을 한 데 묶어 이들의 핵 위협에 동맹과 협력해 외교와 단호한 억지를 통해 대처하겠다고 발언한 정도였다.
바이든표 대북정책 기조가 공개된 직후인 5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에서는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며 대북 외교에 관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비핵화가 매우 어려운 목표라고 인정하면서 핵과 관련한 김 위원장의 약속이 있어야 그를 만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1주년 회견에서 북한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북한 이슈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오히려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계산된 대응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100일만인 작년 4월 말 외교와 대화를 핵심 축으로 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공개하고 북한에 연일 대화의 손을 내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선(先)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북한은 올해 초부터 잇따라 4차례 미사일을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를 북한의 관심끌기로 규정했다. 도발행위를 통해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협상전략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유엔 결의 위반임을 강조하고 북한에 대해 적대적 의도가 없음을 재확인하면서 대화를 촉구하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나쁜 행동'엔 보상하지 않는다는 협상원칙을 고수해온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1주년 회견에서 북한문제에 대해 침묵한 배경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물론 바이든 정부도 앞서 인권을 문제 삼아 북한을 제재하고,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사람들을 제재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물론 추가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며 적절한 수준의 경고음을 북한에 보내왔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이날 '모라토리엄 해제 카드'까지 거론하며 반발함으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셈법은 더 복잡해지게 됐다.
북한의 핵실험 재개나 ICBM 시험발사는 미국으로선 묵과하기 어려운 일종의 레드라인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미 관계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험악했던 2017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북한의 모라토리엄 해제 검토 소식을 전하면서 "북한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며 "미국의 압박은 북한의 격렬한 반응으로 이어지며 이른바 2017년 '화염과 분노' 시기로 회귀할 것이란 불안을 야기했다"고 전했다.
2017년 북한이 핵 개발에 속도를 냈을 때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를 경고하며 김 위원장과 설전을 주고받는 등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로이터는 북한의 이번 결정은 핵실험·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 폐기를 시사했던 2020년 1월 김 위원장의 발언을 넘어선 단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더 강력한 회초리로 응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로 미국 정부는 더 신중한 접근법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위기를 고조시켜 몸값을 올리는 북한의 전략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 북핵문제를 더 꼬이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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